*밴스-오웬안 물거품 제한공습 가능성 "워싱턴=정해영기자" 유
고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보스니아 내전당사자들간의 마지막 협
상이 7일 파국으로 끝남에 따라 서방측의 군사개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유고사태에 대한 독자적인 해결 방안 마련에 부심해 온
클린턴 행정부도 이 때문에 점차 협상을 통한 사태진정 이 불가피하
다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레스
애스핀 미 국방장관은 7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
O) 국방장관 연례 안보정책회의에서 대유고정책과 관련한 미국의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유고협상이 실패한 것은 "외부의 강력한 제
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해 NATO의 무력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뵈
르너 NATO 사무총장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입장을 보였다. 뵈르너
총장은 "NATO가 믿음직스럽게 남으려면 정당한 무력행사를 머뭇거리
며 피해서는 안된다"고 말하자 애스핀 장관은 "미국이 유럽에서 믿음직
한 군대로 남을 것"이라며 화답 을 보냈다. 그러나 아스핀 장관이
직접화법보다 간접화법으로 유고사태를 언급한 것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
유고정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출범직후
국가안보위원회(NSC)가 작성한 질문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준비한 서
류를 놓고 국무부 실무팀을 중심으로 국방부,중앙정보국(CIA) 등 관
련 부처들이 종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이 서류는 정책결정에 대한
어떤 건의도 하지 않고 있고 온갖 가능한 방안들을 망라해 놓고 있다.
구 유고연방 상태로 두는 현상유지안에서 미군의 개입에 이르는 다양한
선택들이 검토대상에 올라있다.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은 이달초 사
이러스 밴스 유엔특사(전 미 국무장관)와 데이비드 오웬 EC 특사가
자신들이 내놓은 평화안을 적극 지원해 줄 것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범재판을 위한 특별법정 설립과 평화유지군 증강에 미국이 그 역할을
담당해 줄 것을 요구했을 때 "새 행정부가 국제평화안을 포함해 유고
정책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니 시간을 달라"는 선에서 답변을 했다
. 그러나 이제 평화협상의 결렬로 밴스-오웬 협상안은 사실상 물건너
간 상태가 돼 클린턴 행정부의 선택의 폭도 그만큼 좁아지게 됐다.
따라서 클린턴은 이제 하루 빨리 정책방향을 정해 행동을 취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몰려 있다. 그렇다면 클린턴 행정부는 어떤 카드로
얽히고 설킨 유고사태의 매듭을 풀려고 할까. 우선 평화협상이 결렬된
이상 유엔 안보리를 통해 교전 당사자들에게 즉각 전투행위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행사할 것임은 쉽게 생각할 수가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클린턴 정부내에서 유엔의 압력정도로 얽히고 설킨 내전이 끝나리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유고사태를 단기간에 해결하려고 미
지상군을 투입할 가능성도 현재로는 희박해 보인다. 미국은 유엔의 이
름이 아닌 단독으로 군사행동을 하다간 또다시 베트남전과 같은 깊은 수
렁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의 진원지이자
2차대전때 유고는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운 독일 나치군에 게릴라전으로
맞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용맹성 을 자랑하고 있다. 유고가 미군
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 경우 내전은 오히려 더 혼미를 거듭하는 장기
전으로 치닫고 베트남전에 진저리를 내고 있는 미 국민들이 이를 지지하
지 않을 것은 쉽게 예상할 수가 있다. 더구나 반전세대이고 당장 코앞
에 닥친 경제회복을 위해 주력해야 할 클린턴이 지상군 파병이란 카드를
쓰는 모험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그 대신 미국은 구호물자의 공급로
확보와 유엔 평화유지군의 안전 등을 내세워 제한된 범위내에서 해군과
공군력을 동원해 공습을 가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정치분석가들은 보
고 있다. 또 NATO 등 서방국가들이 합의를 할 경우에는 유엔 깃발
을 단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미국이 지상군을 보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
지는 않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클린턴은 미군의 인명피해를 각오해
야 하고 경기활성화 우선정책을 뒤로 미루는 결단 을 내려야 한다.
또 유엔평화유지군이 볼모로 잡혀 일이 더 꼬이는 최악의 사태도 염두
에 둬야 한다. 물론 이러한 위험한 승부수는 자신의 인기하락 나아가
정치생명까지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그동안 미국 주도의 대외정책에 긴
밀히 협조해온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이 크로아티아의 세르비아 민병대 공
격을 계기로 서방측의 공동보조에서 이탈할 움직임을 보여 클린턴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옐친은 국내 보수파로부터 러시아와 같은
슬라브계 민족이고 1-2차 대전에서 독일에 맞서 싸웠던 세르비아를 서
방 강대국들의 농간에 맡겨 두고 있다는 비난을 받자 독자노선을 선언하
고 나선 것으로 미국은 보고 있다. 또 NATO가 군사개입을 하는데
도 국가마다 입장이 제각각이어서 미국이 앞장서서 섣불리 군사개입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어렵게 돼 있다. 메이저 영국 총리가 지난주 클린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세르비아군 포대에 공격을 가하거나 보스니아 회
교정부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해 미국이 보스니아사태에
경솔히 개입하지 말도록 경고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따라서 클린턴은 옐
친의 입지도 살려 주고 서방측이 모두 동의하는 유고정책을 내 놓아야
하는 이중 부담까지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