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혼 되짚기 응집된표현 탁월 우리 연극계에는 남자들이 뒤따
를 수 없을만큼 당찬 여자들이 몇몇 있다. 그들중의 하나가 연출가 김
아라이고, 또 하나가 극작가 정복근이다. 이 둘이 모여서 만들어낸 화
제의 연극 숨은 물 (대학로 성좌소극장)이 한달여의 공연을 마치고
31일 막을 내린다. 김아라는 지난해 사로잡힌 영혼 과 동지섣달
꽃본듯이 로 감각적인 무대형상력을 주목받아 연출계의 선두주자가 됐고
, 그 여세를 몰아 무천 이라는 극단 살림을 차렸다. 그와 손잡고
작업한 정복근은 한마디로 희귀한 여성이다. 올곧은 역사의식과 얼음같
은 지조만을 고집하는 어찌보면 시대착오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연극계의 일반적 문제의 하나는 아마추어리즘이다. 자기도취와 어리광으로
, 어설퍼도 대강 잘 봐달라는 식의 연극들 말이다. 이런 와중에서
숨은 물 은 연극도 고전음악 연주처럼 고도의 완성도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우리 아버지 (조상.얼)
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하는 한 소년의 다소 감상적인 질문으로부터
얘기를 끌어낸다. 이어 신라의 삼국통일기, 이성계의 고려왕조 전복기,
한말 일제침략기등 서로 다른 세 시대를 차례로 설정해가며 우리 역사
의 밑바닥에 숨은 물처럼 면면히 이어오는 민족혼을 심의자, 피의자,
변절자라는 세 인물 유형들의 삼각구도를 통해 되짚어 본다. 전체적으
로 이 연극은 완벽주의자들을 위한 선물이며, 마치 육체에너지로 연주된
한 소절의 실내악과 같은 것이었다.전통무술 수벽치기와 탈춤을 통해
단련된 신구 최재영 유영환 정규수 노영화 방은진 지춘성등 출연배우들의
신체와 그 응집된 에너지를 이용한 절제된 표현은 거의 언어처럼, 음
악처럼 분절되어 관객에게 전달된다. 마지막 2분간 무언의 마임부분은
압권이었다. 또한 추상화된 육체동작에 걸맞게 양식화된 음성 구사는
적절히 극화된 피아노 반주, 동요 삽입, 사물장단들과 어우러져 우리
연극으로서는 극히 드물게 뛰어난 청각적 앙상블을 뽑아냈다. 그러나
이런 미덕들에도 불구하고 숨은 물 은 너무 추상적이며 무거웠다. 연
극으로서 통상 갖추어야 할 구체성이 빠졌다. 연출가 김아라는 재기넘치
는 스타일리스트이다. 그런 그가 왜 이처럼 거창하고 강박적인 민족주의
연극을 만들려고 했을까? 어쩌면 그가 선택한 길은 너무 험난한 것일
지도 모른다. 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