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잖은 고득점 오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김영삼 차기 대통령에게
사회문화 분야에 대한 현안보고를 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움직임으로
보아 교육과 문화는 여전히 약방의 감초처럼 구색갖추기와 다름없는 대접
을 받고말 것이 분명하다. 온 세계의 관심이 교육에 쏠리고 있는지
10년이 넘는다. 그것은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가장 긴요한 열쇠가
교육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싱가포르가 교육개혁을 서두른 것은 1980
년부터였다. 일본이 교육개혁심의회를 설립한 것은 이보다 4년후의 일이
었다. 영국도 88년부터 교육개혁 운동에 착수했다. 미국의 부시 대통
령도 미국의 미래를 위해 3년전에 교육대통령이 되겠노라고 공언한 바가
있었다. "모든 국가의 기틀은 그 나라의 젊은 세대의 교육에 달려
있다." 몇천년전에 아테네에서 디오게네스가 한 이 말이 요새처럼 심
각하게 들리는 적은 없다. 우리는 고교생이 2백50만이 넘으며 대학
생이 1백만명이 넘는다는 것을 자랑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키워
온 것은 책을 읽을 줄 아는 능력 뿐이지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가려내는 능력이 아니었다. 우리네 학교에서 지금까지 키워왔고 또 계속
키우고 있는 것은 지적기술자 뿐이다. 그것은 우리네 학교들이 교육이
아니라 훈련을,지혜가 아니라 기술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학입학 시험에서 만점 가까운 합격자가 많았다는 것도 마냥 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높은 점수는 그만큼 뛰어난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처럼 높은 점수를 얻기위해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겠는가. 그리고 그중에는 오락시간만이 아니라 독서의 시간,
생각하며 창조력을 키우는 시간까지도 들어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내일의
아인슈타인이나 슈베르트,괴테는 도저히 합격하지 못하리라는 것만은 분
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외국에서는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뛰어난 창조력
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교육제도에
는 그런 마련이 전혀 없는 것이다. 민족적 창조력 저하 한 세대에
걸친 학교의 평준화와 획일교육 그리고 불합리한 입시제도는 우리나라
교육을 걷잡을 수 없이 황폐화시켜 놓았다. 분명 한사람의 머리보다는
두 사람의 머리가 더 잘 생각한다. 그러나 열사람의 평범한 머리를 합
친다해도 전쟁과 평화 를 써내지는 못하며 스무사람의 작곡가가 모인다
해도 운명 교향곡만한 명곡을 작곡해 내지는 못한다. 창조적인 사
고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을 통해서만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요새 매
일같이 경제에 있어서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로
우려해야할 것은 민족적 창조력의 약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
식의 양만 강조할뿐 사고의 질은 등한시 한다. 착한아이 의 적응력,
순응력을 위한 길들이기에 치중할뿐 자유로운 사고의 주체가 되는 개성은
무시하려든다. 만약에 우리네 교육의 풍토가 이대로 변함이 없다면 우
리는 더욱 뒤질 수 밖에 없으며 계속 선진국들에게 기술 이양을 애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새 정부가 어떤 신한국을 구상하고 있는지는
아직 분명치는 않다. 그러나 그게 어떤 것이 되든 그것은 한국의 젊
은이들이 모든 분야에서 당당히 세계의 어느 나라 젊은이들과도 맞설 수
있는 터전이라야 하며 그 밑받침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창조력인 것
이다. 이렇게 볼때 새 정부가 무엇보다도 먼저 주력해야 할 것은 나라
의 앞날에 활력을 불어 넣고 새로운 비약의 날개가 되는 창조력을 키우
는데 필요한 교육이다. 일본만 해도 자기 마음이 내킬때 등교해서 자
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어떻게 하든 자유로운 특수고등학교가 20개가 넘
는다. 그것은 파스칼처럼 병약하여 아침 잠이 많거나 모든 학과를 골고
루 다 잘 하지 못한 다윈이나 아인슈타인같은 특별한 재능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대로의 학교라면 에디슨소년이
자랄 길이 없으며,처칠 소년이 발붙일 가망은 전혀 없다. 우리나라의
불행하고도 착한 어린이들은 여전히 시험위주의 주입식교육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자유롭게 뛰놀고 자유롭게 개성을 펴나갈 수 있는 여유가 전
혀 없다. 2천년대 향한 과제 미국의 어린이들은 집에 돌아가도 반
시간이상 공부하지 않아도 될만큼 자유롭다. 그것은 개성을 키우고 창조
력을 키우는 교육이 우선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두 나라의 내일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아인슈타인은 미국의 어린이교육에 대하여 다
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와 같은 교육제도가 어린이들의 신성한 호기심
의 숨통을 틀어막지 않고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제 힘으
로 찾아내고 생각하는 기쁨이 강제나 의무감에 의해 촉진된다고 생각한다
면 엄청난 잘못이다." 새 정부의 주인공들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신한국의 새 일꾼을 지금 그대로의 학교들이 과연 키워낼 수 있겠는가
를. 우리네 교육의 풍토는 완전히 새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2
천년대를 살아남는다. 그것은 모든것에 우선하는 우리들의 절실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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