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평가 미-독처럼 해야/수년짜리 과제 하룻밤 써내면 통과
1백여명이 두달걸려 독일 칼스루에대학은 기계공학과에만 16개의 연구
소가 있다. 그중 하나인 내연기관연구소는 초정밀도의 제트터빈엔진을 개
발중이다. 이 연구소가 3년 예정의 연구계획서(프로포절)를 제출한 것
은 작년 8월. 공동연구를 진행할 1백여명이 두달을 매달려 7백쪽짜리
연구계획서를 작성했다. 전문가들이 와서 연구책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
고 질문을 던지고 현장을 답사하고 다시 추궁하고 . 꼬박 이틀밤을 새
우고 나서야 합격판정이 내려졌다.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연구팀은
5년전 에너지부가 공모한 초전도 자석제작에 응모했다. 핵융합 원자로
에 들어가는 초전도 자석과 진공장치 개발 프로젝트였다. 5천만달러짜리
를 따내기 위해 20명의 팀이 만들어져 사전연구겸 계획서를 쓰는데 넉
달 걸렸다. 여기 든 비용만 2백만달러. 응모에서 떨어지면 그냥 날아
가는 돈이다. 10여명으로 구성된 위원회 앞에서 3일간 심사를 받고나
서야 제너럴 다이내믹스팀은 과제를 따냈다. 6백쪽짜리 계획서는 그것만
으로도 결과를 거의 내다볼 수 있는 훌륭한 사전조사서다. 심사전문가
없는 수도 연구팀은 그래도 초전도자석 분야에서는 10년동안 수차례
참여한 출전경력 (트랙 레코드) 때문에 무난히 따낸 편이다. 정부
가 발주하는 과제 셋중 하나만 따면 살아남을 수 있는게 미국 기술계다
. 야구로 치면 3할대 타자라야 행세하는 셈이다. 우리 정부가 10
년전부터 시행해 오고있는 특정연구 과제도 물론 연구계획서 공모와 심사
절차가 있다. 어떤 절차인가. 정부가 공모하면 대학과 기업체도 응하지
만 80%는 출연연 차지다. 계획서는 하룻밤동안 써서 내도 그대로 통
과다. 7억원짜리 과제가 겨우 1백쪽,2억원짜리가 30쪽인 경우도 수
두룩하다. 계획서 제출과 경쟁이라도 벌이려는 듯 심사도 대부분 한두
시간을 넘지 않는다. 심사할 전문가가 없는 수도 있다. 이 지경이니
연구결과에 대한 사후평가가 제대로 될리 없다. "계획서를 내도 실장
이나 부장이나 잘했다 잘못했다 말이 없어요. 말은 커녕 설명할 기회도
안주니 ." 작년초 미국에서 KIST로 옮겨온 한 젊은 연구원이 가
장 견디기 어려운건 매일 1시간씩 연구원들끼리 격론을 벌였던 미국과
너무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평가는 연구원에게만 필요한게 아니다. 네
덜란드의 에너지연구소 항공연구소 등 5개 대형연구소는 4년마다 발전전
략계획서를 내놓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85년부터 법으로 못박고 있다
. 출연연평가 단 한번 독일도 80년부터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공동
지원하는 47개 연구소와 연방정부 지원의 13개 대형연구소에 대해
정기적인 평가를 시작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78년부터 5년간 산하 국
립연구소에 관한 조사보고서를 큰 것만 7개 작성했다. 영국의 과학기술
평가국은 정부지원 연구소의 개발실적이 경제에 미친 영향을 진단하는 평
가전담기관이다. 다시 우리 현실을 보자. 전 출연연구소에 대한 평가는
91년에 와서야 겨우 한번 했다. 그나마 3개월 남짓 걸렸다. 그
때 매겨진 과기처 산하 16개 연구소의 점수다. 1백점 만점에서 전기
연구소 78.9점으로 1위,한국 과학기술연구원 72.8점,한국과학기술
원 72.7점,해양연구소 72.4점,한국표준과학원 67.7점 . 꼴찌
는 32.4점이었다. 이 결과조차 쉬쉬해왔다면 평가가 얼마나 정확했는
지는 따질 필요가 없다. 애매한 평가,베일에 가려진 평가의 세계에선
연줄 이 실력을 밀어낸다. 학연-지연-혈연이 실력을 쫓는 악화로
둔갑한다. 87년 신발산업 육성의 기치를 내걸고 출발했던 신발연구소.
그 연구소는 3년도 채 안돼 극도의 내분에 휩싸여 본업을 팽개쳤다.
특정지역 특정학교 출신 연구원들에 대한 무더기 대기발령 인사,연구원
들의 노조결성,소장 비리캐기와 진정사태의 숨바꼭질 . 풍비박산 되다시
피한 신발연구소는 한때 수출 세계 1위의 고지를 점령하는가 했더니,하
루아침에 비참하게 쓰러져 가는 신발업체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기
술전쟁은 승자만이 살아남는 진검승부다. 줄을 잘서 계급장을 단 지휘관
이 맨앞에 나서는 싸움의 승패는 해보기도 전에 이미 정해져 있다. 하
물며 진격해오는 적앞에서 끝없는 내전만 벌인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