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떠나가는 「생활의 정거장」
강남
고속터미널
승객—상인(商人) 어우러져 온종일 북적
연착 막차(車)손님들 한밤「귀가전쟁」
장마가 걷히고 모처럼 맑은 주말을 맞은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은 평소보다 많은 승객이 몰리면서 활기가 넘쳤다. 오전에만 벌써 1만5천여명이상의 승객을 떠나보낸 경부—구마선 승차장이 있는 터미널건물 1—3층은 오후2시가 가까워지면서 발디딜틈조차 없었다.
서둘러 퇴근해 고향으로 가려는 회사원들, 반바지차림에 배낭을 맨 젊은이들, 방학을 맞아 엄마 손을 잡고 친척집을 찾아가는 어린아이들, 휴가나온 군인, 자식집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듯한 노부부들로 매표구 앞은 왁자지껄했다. 더러는 화려한 쇼프로그램이 방영되는 TV앞에서 버스출발을 기다리는 무료함을 잊고 있었고, 이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건물내 상점상인들의 손님 부르는 소리가 섞여 터미널 특유의 생동감을 엮어내고 있었다.
종사원 모두 만(萬)2천명
3백65일을 하루같이 사람들을 맞아 들이고 떠나보내는 터미널 식구들이 이날 긴 장마끝의 따가운 햇살을 반겨하는 것은 바로 이들 피서인파때문인듯했다. 10층짜리 터미널 건물 곳곳에 있는 3천여개의 각종 상점주인들, 짐꾼들, 매표소의 여직원, 구두닦이들, 검표원, 주변경비를 맡고 있는 청원경찰, 그리고 고속버스 운전사.
터미널을 드나드는 시민들을 상대로 삶을 꾸려가는 1만2천여명의 터미널식구들은 그동안 보름 가까이 계속되는 장마때문에 여름휴가철 대목이 타격을 입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2주전 주말보다 2배 가까운 여행객을 맞은 이날 터미널식구들은 더운날씨에도 짜증스러운 기색이 아니었다.
『시원한 콩국수 냉면있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빨리 됩니다.』
“계속된 장마”걱정도
터미널 1층 통로 양쪽으로 늘어선 음식점 종업원들은 부채를 연신 흔들어대며 손님을 끌어들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후2시에서 3시사이 터미널내 식당들은 몰려드는 손님들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다.
1층 버스승강구입구쪽 성도식당 주인 박봉희(朴鳳姫)씨(48·여)는 『주문한 음식이 빨리 안나온다고 다그치는 손님들을 상대하다보면 제정신이 아니다』면서도 4명의 종업원에게 「물날라라」「김치 더 드려라」이것 저것 지시하는 목소리에는 흥이 담겨있었다.
이시각 경부선 승차장은 짐을 끌어안고 긴의자에 앉거나, 신문지를 펼치고 승차장 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직장동료 3명과 함께 무주구천동으로 캠핑가는 길이라는 김애경(金愛鏡)씨(23·여·대우중공업사원)는 『오전에 나왔는데도 김천행 오후5시40분 차표를 겨우 끊을 수 있었다』며 『그렇지만 친구들과 재잘대며 군것질도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것도 재미있다』며 웃었다.
5~10분 간격을 두고 버스가 승차장에 들어서면 먼저 탑승하려는 승객들은 또한번 줄을 섰고 검표원들의 목놀림이 바빠졌다.
검표원들은 표를 받고 탑승시킨뒤 빈자리가 생기면 남보다 앞서가려는 성급한 손님을 골라 태우곤 했다.
H고속소속 검표원 이광식(李廣植)씨(29)는 『아침 6시 첫차부터 막차까지 하루평균30여대에 1천여명의 승객을 태워보낸다』며 『최근에는 버스가 연발하는 경우가 많고 고속버스이용객이 줄어 빈자리 나기를 기다리는 승객들을 골라 태우던 재미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회사당 하루 1천여명
오후 2~3시는 터미널6,7,8층에 있는 의류전문상가가 하루중 가장 붐비는 때다. 버스출발시각을 넉넉히 남겨둔 지방사람들이 선물을 사기 위해 자주 들르기 때문이다. 6층 신생아복 전문점 「마모스」주인 양(梁)금자씨(52)는 『예전에는 뜨내기 손님들이라고 바가지 씌우는 경우도 많았지만 요즈음은 그렇지않다』며 『값싸고 좋은 물건을 여기서 사본 사람들은 서울 올때마다 꼭 들르는 단골이 됐다』고 말했다.
터미널지하상가에는 「박리다매(박리다매(薄利多売))」를 겨냥한 싸구려 옷가게들이 자리잡고 역시 손님맞이에 바빴다. 지하철 탑승구에서 터미널로 통하는 통로에서 옷가게를 하는 박희숙(朴喜淑)씨(30·여)는 『3천원짜리 남방을 2천원으로 깎아달라는 시골아줌마도 있다』면서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이 길을 물어와 성가실때도 많다고 말했다.
북적대던 승차장도 오후8시가 넘으면서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 이날 고속버스를 이용한 승객은 전날보다 1만2천여명이나 많은 3만8천여명. 승객을 임시버스 40대까지 포함, 1천60여대의 버스에 태워 떠나보냈지만 언제 북적였나 싶게 사람들의 모습이 뜸했고 밤10시가 되자 6—7—8층 의류상가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1층 승차장쪽 가게들로 다음날 손님맞이 준비를 위해 하나—둘씩 셔터문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터미널동쪽끝 하차장은 이시간에도 하차하는 사람, 마중나오는 사람들이 어울려 여전히 혼잡했다.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며 목을 길게 빼고 들어오는 버스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고속도로사정이 부쩍 나빠지면서 나타난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이다.
밤9시30분쯤 마산에서 상경하는 처가식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김종근(金鍾根)씨(45)는 『도착 예정시간이 한시간이나 지났는데도 기다리는 버스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88년부터 승용차가 늘어나고 고속도로 재포장공사가 진행되면서 비롯된 정체현상으로 1~2시간씩연착하기가 예사라는게 고속버스운전사들의 한결같은 얘기였다.
밤 10시쯤 경주에서 출발해 예정보다 1시간30분 늦게 도착한 광주고속소속운전사 박(朴)모씨(42)는 『차량홍수속에서 한두시간쯤 더 운전을 하는 것은 참을만하지만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쏟아붓는 승객들의 불평을 들어야 할 때가 무척 괴롭다』고 말했다.
연착(延着) 많아 마중객 곤욕
밤11시. 여느때 같으면 전국각지에서 올라오는 막차가 하차장에 승객들을 내리고 2만8천여평 터미널부지도 휴식에 들어갈시간이다. 하지만 늦게 도착하는 승객들로 인해 터미널광장은 또 한차례 「귀가전쟁」을 치러야 했다.
밤12시가 넘어 전철은 끊어지고, 시내버스도 뜸해지자 1백여명의 승객들은 광장앞 택시승강장으로 우르르 몰렸다. 몇몇 약삭빠른 사람들은 웃돈을 얹어주기로 하고 잽싸게 택시에 올랐고 행선지가 맞지 않는 승객과 택시운전사의 실랑이가 심심찮게 벌어졌다.
그러나 새벽2시가 되면서 터미널의 떠들썩함은 정적에 묻혔고 터미널식구들도 내일을 준비하며 깊은 휴식에 들어갔다.
<송의달(宋義達)기자>
[출처 : 조선일보 뉴스 라이브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