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4천년 전(前) 쌀농사」 입증(立証)

김포—일산 유적(遺跡) 볍씨 발견 의의

신석기대(代)로 기존 주장 천(千)년 당겨

「일(日) 통한 전래」 설(說) 뒤엎을 근거로

1991년 6월 26일 조간11면 기사(문화)

우리나라에서 쌀농사가 처음 시작된 것은 언제일까. 그동안 고고학적 유물이 거의 없어 논란을 거듭하던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쌀농사설(說)을 확고하게 입증하는 고고학적 발굴이 잇따라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경기도 김포군 계현리 선사유적에서 서울대 박물관팀(단장 임효재(任孝宰))이 서기전 2100년대의 볍씨를 발견한데 이어 일산 신도시 개발지 일대를 조사중인한국선사문화연구소(단장 손보기(孫寶基)) 공동발굴단은 이 지역에서 서기전 2400년대의 국내 최고(最古)의 볍씨를 발굴, 우리나라의 쌀농사 기원을 지금으로부터 4천여년 전 이상으로 못 박는 개가를 올렸다.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송포면 선사유적을 발굴 중인 한국선사문화연구소 공동발굴단의 이융조(李隆助)교수(충북대 박물관장)는 25일 『이 지역의 신석기시대 토탄층에서 볍씨 4개를 발견, 미국 베타스연구소에 탄소연대 측정을 의뢰한 결과 지금으로부터 4천 3백 4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고 공식 발표했다. 따라서 우리나라 쌀농사의 기원이 현재까지 알려진 것보다 1천년 이상 올라가게 됐다.

미(美)서 탄소 측정 확인

우리나라에서 쌀 농사의 상한 연대를 언제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그동안 고고학계에서 많은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벼농사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그 기원과 발달 문제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문화 전파경로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밝힐만한 고고학적 근거들이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쌀농사 기원은 문헌적 연구를 통해 「서기전 100년 이전」이라고 추정될 정도였다. 그러다가 77년 경기도 여주군 흔암리에서 서기전 600~500년경의 볍씨가 발견됨으로써 상한 연대가 약간 올라갔지만, 자신들의 쌀농사 역사 상한을 서기전 1000년으로 잡고 있는 일본인 학자들의 학설에 묶여 더 이상 기원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82년 평양 호남리 남경유적에서 3천여년 전의 볍씨가 무더기로 발굴된 데이어, 남한에선 85년 손보기(孫寶基)교수가 연평도 부근 우도와 경기도 광주군 궁평리에서 볍씨자국이 있는 3천~3천 5백년 전의 토기들을 발견했다. 북한 학계는 이를 바탕으로 신석기시대 쌀농사를 정설화 하고 있다. 하지만 남한학계에서는 구체적인 고고학적 유물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최근까지도 우리나라에서의 쌀농사는 청동기시대에나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시각이 주류를 이뤄왔다.

이에 따라 중—고등학교의 교과서도 신석기시대의 농사는 조, 피 등의 밭농사가 대부분이었고, 신석기시대가 끝날 무렵에야 쌀농사가 일부 시작된 것으로 돼있다.

유입경로 재검토를

결국 이번에 김포와 일산 일대에서 4천년 이상된 볍씨들이 잇따라 발견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도 신석기시대에 이미 쌀농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는 결정적 「물증」들이 확보된 셈이다.

또한 그간 일부 일본학자들은 우리나라 쌀농사의 기원을 서기전 1천년 이후로 못 박고, 쌀이 일본을 통해 한반도로 갔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으나, 이를 완전히 뒤엎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손보기(孫寶基)교수는 『볍씨가 발견된 곳과 비슷한 지층에서 박씨, 오이씨, 콩껍질 등 남방계의 다양한 채소류가 발견돼 쌀농사의 전파경로와 관련해 주목된다』며 『이 지역에선 특히 신석기뿐 아니라, 구석기, 중석기, 철기시대에 이르는 유물층이 연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보다 장기적인 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혁종(權赫鍾)기자>

[출처 : 조선일보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2167419910626m1111&set_date=19910626&page_no=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