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8월초 대만을 방문한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19일 자 보도로 대만해협이 다시 격랑에 휩싸인 한 주였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4월10일 대만을 찾을 계획이었다가 코로나에 감염되는 바람에 계획을 취소했죠. 그렇게 미뤄둔 대만 방문을 이번에 하겠다는 겁니다.·보도가 나오자 중국은 펄쩍 뛰었어요.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방문을 강행한다면 반드시 단호하고 강력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방문 일정에 맞춰 대만을 공격하자”는 격한 주장도 쏟아지더군요.
◇25년 만의 방문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1997년 뉴트 깅리치 의장 이후 25년 만입니다. 하원의장은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에 이어 승계 서열 2위인 최고위급 인사죠. 이런 인사가 대만을 방문한다는 건 1979년 수교 당시 양국이 합의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게 중국 측 주장입니다.
작년과 올해 적잖은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대만을 방문했죠. 상·하원 의원과 전직 합참의장, 전직 고위 관료 등이 줄줄이 대만을 찾았습니다.
대만을 방문하는 미국 인사들은 의회 인사나 전직 관료들이 많아요. 전직 관료는 현 정부의 인사가 아니니까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게 미국의 주장입니다. 중국도 여기에 대해서는 크게 시비를 거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그런데 의회 쪽은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은 의회를 정부 조직이 아니라고 보는데, 중국은 의회 역시 정부의 일부라고 주장해요. 그래서 미국 의원들이 대만을 방문하면 중국 공군기들이 대만 방공식별구역으로 넘어가 무력시위를 벌이곤 합니다.
◇정상회담 앞둔 백악관도 당황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소식에 중국은 ‘단호하고도 강력한 조치’를 예고했어요. 인민해방군 동부전구가 1급 경계 태세에 들어가고 공군기들을 대만 영공으로까지 보내는 식의 대응을 하겠다는 협박입니다.
중국군과 핫라인을 운용하는 미군 측도 난감해 하는 듯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펠로시 의장 대만 방문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군에서는 지금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본다”고 했죠.
8월은 중국에 민감한 시기입니다. 8월1일은 중국 인민해방군 창군 기념일이죠. 10월에는 시진핑 국가 주석의 3번째 임기가 결정되는 공산당 20차 당 대회가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중국 당국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는 게 미군의 판단인 것으로 보여요.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간 화상 회담을 준비 중인 백악관도 탐탁해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바이든 정부는 경쟁은 하되 우발적 충돌은 막기 위해 중국과 꾸준히 대화를 하고 있죠.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자칫 이런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합니다. 백악관은 애초 8월 중으로 잡았던 미중 정상 회담 일정을 7월 말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해요.
◇펜타곤 반대에도 강행할 듯
이런 우려가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을 두 차례나 주도할 정도로 강단 있는 펠로시 의장이 대만행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방문 날짜도 고의로 중국이 민감해하는 시기를 택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강력하게 지지했고, 올해 초에는 남미 방문 뒤 미국을 경유해 귀국하는 라이칭더 대만 부총통과 화상회의를 갖는 등 중국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 왔습니다. 대만을 방문 중인 마크 에스퍼 전 미국 국방장관도 21일 현지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미국 관리들의 여행 일정을 좌지우지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더군요.
펠로시 의장은 다음 달 일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을 방문하는 길에 대만을 들를 계획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내 반중여론을 자극해 민주당 지지율을 끌어올려 보려는 정치 행보 정도로 낮춰 보더군요. 그러면서도 펠로시 의장이 방중을 강행하면 대응책이 마땅치 않아 고심하는 분위기입니다.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은 “인민해방군 전투기들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펠로시 의장이 탄 전용기와 동반 비행을 해 대만 상공으로 들어가자”고 제안했더군요.
문제는 시 주석 연임을 결정하는 20차 당 대회가 코앞이라는 점이에요. 강경 대응 과정에서 의외의 사태가 발생하면 시 주석이 원하는 ‘성대한 황제 대관식’은 어려워 지겠죠. 중국 관영 매체와 당국자들이 연일 큰 목소리로 떠든다는 건 그만큼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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