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오늘은 사반세기 만에 국내 개봉하는 일본 공포 영화 ‘큐어’ 이야기입니다.

25년 만에 첫 국내 개봉하는 1997년 영화 ‘큐어’. / 엠엔엠인터내셔널

“영화에 대한 개인적 생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 가운데 하나.”(봉준호 감독)

“넷플릭스 ‘지옥’을 촬영할 때 촬영 감독과 함께 가장 많이 봤던 영화.”(연상호 감독)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스스럼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일본 영화가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66) 감독의 1997년 공포물 ‘큐어’다. 이 영화가 사반세기만인 올해 국내에서 지각 개봉했다. 그동안 영상물(DVD)로 나오거나 영화제·기획전 등을 통해서 소개된 적은 있지만, 극장에서 정식 개봉한 건 처음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2008년 ‘도쿄 소나타’와 2020년 ‘스파이의 아내’ 등으로 국내에서도 친숙한 일본 영화의 거장. ‘큐어’ 역시 ‘링’이나 ‘주온’과 더불어 ‘J호러(일본 공포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런데도 국내 개봉이 늦어진 이유가 있다. 1998년부터 일본 대중문화 단계적 개방 조치가 시행되기 직전의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 때문에 ‘큐어’는 국내 대학가와 시네마테크를 통해서 먼저 유통됐고 2004년 정식 수입 이후에도 곧바로 DVD로 출시됐다.

엠앤엠인터내셔널 사반세기만에 지각 개봉하는 일 공포 영화 '큐어'.

‘큐어’는 목에 X자를 새겨 넣는 엽기적인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 영화 ‘쉘 위 댄스’의 일본 국민 배우 야쿠쇼 코지가 주인공 형사 역을 맡았다. 현 시점에서 보면 줄거리보다 더욱 신선하고 충격적인 건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다. 우선 공포를 자극하는 효과적인 장치인 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신에 세탁기가 돌아가거나 물이 떨어지는 소리 등 지극히 일상적인 음향을 통해서 오싹함을 자아낸다. 또 장면 지속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서 긴박감을 쥐어짜는 공포 영화의 천편일률적인 공식에서도 과감히 탈피한다. 중간에 화면을 끊지 않고 공간 전환도 거의 없는 긴 호흡의 촬영을 통해서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촬영 방식이 영화 팬들을 사로잡는다.

지금 한국에서 여전히 이 영화가 유의미한 이유는 뭘까. 일본 영화·드라마의 시장 잠식을 우려했던 1990년대 작품들이 거꾸로 한국 영화·드라마의 만개(滿開)에 톡톡히 효자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 덕분은 아닐까. 사반세기 전에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일본 영화들을 지금은 맘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