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영화·미디어·음악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걸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난민이 된 우크라이나 작곡가의 사연입니다.

우크라이나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프

여든 넷의 우크라이나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프가 결국 러시아의 침공 때문에 조국을 떠났습니다. 당초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남고자 했지만, 가족과 친구들의 권유에 따라 최근 폴란드를 거쳐 독일 베를린에 정착했다고 하지요.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잘 알려진 현존 작곡가이자 음악적 대변자가 이번 갈등으로 난민이 되고 말았다”고 전했습니다. 영어 단어 ‘refugee’에는 난민과 망명자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지요. 이 경우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반발 때문에 조국을 등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심 끝에 ‘난민’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실베스트로프는 “딸과 손녀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21세기 들어서 그는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자유를 염원하는 곡을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침공 이후에는 외신 인터뷰 등을 통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요. 그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국제 테러리스트이며 1000배는 더 위험한 인물”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지요. 특히 그가 올해 사태를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침공과 연관지어서 해석한 대목에 눈길이 갔습니다. 당시 사태와 연장선에 있으며, 크림 반도에서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규모가 커진 것이라는 분석이지요. 그는 “2014년 사태가 이중주나 3중주 같은 실내악이라면, 이번에는 관현악 버전”이라고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실베르트로프는 소련 시절인 1960년대에는 무척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그의 교향곡 3번 같은 작품은 1968년 서독의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브루노 마데르나의 지휘로 소개되기도 했지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했던 구소련 시절에 그의 작품 세계는 당국의 노선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68년 소련 체코 침공 당시에는 항의의 의미로 작곡가 회의 도중에 나가버렸고, 결국 1970년 우크라이나 작곡가 연맹에서 제명되고 말았지요. 3년 뒤에 재가입했지만 그 뒤에는 조용히 은둔하는 편을 택했고, 작품 세계도 점차 고독하고 사색적으로 변모했다고 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가 러시아 문화나 예술가 전체에 대한 거부는 옳지 않다고 밝힌 대목도 인상적입니다. 그는 “자칫 ‘전 세계가 러시아를 공격하고 있다’는 잘못된 알리바이를 푸틴에게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지요. 그는 푸틴 지지 단체와 인사들로 제재를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요.

우리는 전쟁과 음악이라고 하면 2차 대전 당시 목숨을 잃었던 유대인 음악가들이나 스탈린의 핍박을 받았던 쇼스타코비치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비극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의 작품에 대한 재조명 작업 역시 우크라이나의 비극적 현실과 무관하지 않겠지요.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음악은 현실과는 무관한 순수한 예술이라는 말을 슬프게도 더욱 믿을 수 없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