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영화·미디어·음악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걸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최근 세상을 떠난 피아노의 거장 라두 루푸 이야기입니다.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

클래식 음악계의 별들이 우수수 떨어진 주간으로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루마니아 출신의 명피아니스트 라두 루푸(76)와 미국의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안겔리치(52), 영국 작곡가 해리슨 버트위슬(88) 등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지요. 특히 라두 루푸는 김선욱과 조성진까지 전 세계 피아니스트들이 사표로 삼는 거장으로 유명합니다.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라고 할까요. 실제로 루푸의 별세 소식에 수많은 음악인들이 애도의 뜻을 밝혔지요.

루푸는 1966년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 1967년 루마니아의 에네스쿠 콩쿠르, 1969년 영국 리즈 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면서 세계 음악계에 화려하게 데뷔했지요. 그 뒤에도 명문 음반사 데카를 통해서 베토벤과 브람스, 슈베르트의 음반들을 발표해서 세계 음악 팬들을 매료시켰지요. 하지만 이 매력적인 피아니스트는 수십 년간 인터뷰에 거의 응한 적이 없어서 전 세계 언론의 애를 태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은둔의 피아니스트’로도 불렸지요.

2012년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 내한 공연 당시 기사

이럴 때는 직간접적 취재를 통해서 그의 모습을 담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2012년 내한 당시에도 프리뷰와 리뷰 기사를 거듭 썼던 기억이 납니다. 공연을 앞두고 연주자가 내거는 조건들이 있는데, 라두 루푸 역시 까다롭기로 소문이 났지요. 특히 무대에서 사용할 피아노는 ‘스타인웨이가 제작한 연주용 그랜드 피아노 중에서도 일련번호 6자리 가운데 첫 3자리가 578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독특한 조건도 있었습니다. 피아노 건반의 무게는 저음에서도 53g을 넘지 말아야 하고, 언제든 건반 무게를 측정할 수 있도록 현장의 조율사가 실측 장비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도 명시했지요. 당시 음악계에서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중에서도 무겁고 어두운 음색보다는 상대적으로 투명하거나 맑은 음색을 선호한다는 의미로 풀이했습니다. 그가 연주하는 의자 역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등받이 없는 의자가 아니라 등받이가 있는 사무용 의자를 원했지요.

이 때문에 당시 첫 내한 공연을 앞두고 그가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노를 고르는 광경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질문도 없이 그저 멀찍이 현장을 지켜보았지요. 루푸가 내건 조건에 걸맞은 스타인웨이 피아노 3대와 의자 7개가 나란히 놓인 풍경 자체가 이색적이었습니다. 당시 코트 차림으로 무대에 나온 루푸는 장기인 베토벤의 협주곡과 슈베르트의 독주곡으로 피아노 3대의 상태를 직접 체크했지요. “평소보다 조금은 느린 템포로 트레몰로를 반복하는 모습이 아이를 돌보는 부모, 환자를 살피는 의사의 표정과도 같았다”고 당시에 썼네요. 의외로 피아노 ‘간택’은 10분만에 끝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이처럼 연주 직전까지는 까다롭기 그지없었지만, 당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4번 협연을 마친 뒤에는 지휘를 맡았던 이대욱 선생님과 함께 피아노 한 대에 나란히 앉아서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을 앙코르로 선사했습니다. 협주곡 두 곡을 지휘하느라 고생하셨던 이대욱 선생님을 배려해서 고음 파트를 부탁하고, 루푸 자신은 저음 위치에서 연주한 것도 무척 아름다운 풍경이었지요. 인터뷰와 사진 촬영, 녹음까지 사절하는 까칠한 연주자의 따스한 마음씨를 엿본 것 같았다고 할까요.

정경화와 라두 루푸의 프랑크 드뷔시 바이올린 소나타 음반

루푸는 한국 음악계와의 인연도 돈독한 편입니다.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와 함께 1977년 녹음한 드뷔시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음반은 지금도 한국 애호가들에게 필청반으로 꼽히지요. 정경화 선생님과 인터뷰할 적에 ‘반주자’ 루푸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정경화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루푸는 너무나 완벽주의자여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피아노를 마구 두들겨댔지만, 정작 리허설을 무척 싫어해서 베토벤은 한 번 연습하고 그대로 연주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극히 모순적인 두 말을 종합하면 ‘게으른 천재’가 되겠지요.

녹음 당시에도 티격태격하는 일이 많아서 정경화 선생님은 호텔로 돌아온 뒤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답니다. 녹음을 마친 뒤에도 3년이나 출시를 보류했는데, 보다 못한 음반 프로듀서가 두 연주자를 조용히 스튜디오에 부르더니 가만히 이 녹음을 들려주었답니다. 그제서야 루푸와 정경화 모두 음반 출시에 동의했다고 하지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라두 루푸의 별세 소식에 올린 추도 글.

‘게으른 천재’ 같지만 지휘자 정명훈이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연주자가 루푸였습니다. 특히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조성진 같은 젊은 연주자들에게도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는 음악적 스승이기도 했지요. 조성진은 루푸 타계 소식에 “우리 시대 위대한 음악가의 죽음에 가슴이 무너진다”고 애도를 표했습니다. 이 글을 읽은 미국의 음악 평론가 알렉스 로스는 “재능 넘치는 조성진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루푸의 영향을 느꼈다”고 말했지요. 이처럼 루푸의 후배들은 모두 거장의 영향을 조금씩 받았겠지요.

제게도 루푸는 잊을 수 없는 연주자입니다. 유럽에 1년간 체류하면서 8개국 21개 도시, 42개 공연장에서 176편의 공연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2010년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루푸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지휘 마렉 야노프스키)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할 당시 두 차례 모두 지켜보았지요. 이듬해 8월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루푸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지휘자 아바도와 협연할 때에도 현장에 있었습니다. 당시 경험을 담은 졸저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에도 스위스 제네바 공연에 대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마침내 협연이 끝났을 때 끝없이 늘어선 기립 박수의 대열에도 루푸는 악장과 지휘자와 먼저 반갑게 악수를 나눈 뒤에야 천천히 객석을 향해 돌아서서 가벼운 목례를 보냈다. 음악은 오로지 음악으로 말할 뿐이며, 별다른 첨언이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듯 말이다. 공연이 끝난 뒤, 나는 주머니 속에서 같은 곡을 연주하는 다음날 연주회 티켓을 연신 어루만지고 있었다.”(졸저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