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영화·미디어·음악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걸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지난 만우절에 깜빡 속을 뻔했던 외신 이야기입니다.

서울시향 음악감독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

직업적 특성상 의심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올해 만우절에는 깜빡 속을 뻔했습니다. 외신을 통해서 쏟아지는 ‘만우절 장난 기사’ 이야기입니다.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보도 자료가 발단이었지요. 만우절을 앞두고 이 악단을 이끌고 있는 핀란드 출신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69)가 넷플릭스 새로운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무려 계약금도 7500만달러(900억원)나 된다고 했지요. 벤스케는 현재 서울시향의 음악감독이기도 하지요.

자료를 천천히 읽다가 ‘아차 속았다’는 생각과 함께 무릎을 치고 말았습니다. 벤스케의 ‘가짜 소감’도 무척 그럴 듯했지요. “2003년부터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에 와서 음악과 많은 좋은 일들을 함께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며, 나는 넷플릭스와의 파트너십에 기쁘고, 앞으로 EGOT에도 도전할 것”이라는 대목에서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EGOT’는 에미상, 그래미상, 오스카상, 토니상의 머릿글자를 딴 신조어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제부터 연예계로 본격 진출하겠다는 선언이 되지요. 보도 자료를 거의 끝까지 읽고서야 ‘만우절 장난 기사’인 줄 알았으니, 참으로 한심하다는 탄식도 들었지요.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가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만우절 장난 발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2018년에는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의 야구 선수였던 조 마우어가 작곡한 교향곡을 녹음하겠다고 발표했지요. 2019년에는 남극 공연을 추진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한참 웃다가 이번엔 다른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이 장난 발표에 깜빡 속을 뻔했을까.’

무엇보다 넷플릭스의 공격적 투자가 첫 번째 이유겠지요. 하지만 벤스케 자신이 음악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 두루 능한 ‘팔방미인’이기도 합니다. 악단의 발표 자료에도 나오지만 벤스케는 지휘자이자 작곡가, 클라리넷 연주자일 뿐 아니라 오토바이를 즐겨 타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벤스케가 다큐의 주인공이 될 만한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점이야말로 또 한 가지 이유일 겁니다.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마지막으로 벤스케가 핀란드의 라티 심포니를 시작으로 영국 BBC 스코티시 심포니와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까지 세계 유수의 악단을 도약시키는데 발군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있겠지요. 특히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에서 19년간 재직하면서 베토벤, 말러, 시벨리우스의 교향곡들을 녹음해서 그래미상을 받기도 했지요.

올 시즌은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서울시향의 임기 마지막 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아쉬움이야말로 깜빡 속고 말았던 마지막 이유가 아닐까요. 벤스케는 아직 지휘자로서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줄 잠재력을 충분히 갖춘 음악인입니다. 앞으로도 세계 음악계에서 더 많은 활약을 기대합니다. 비록 넷플릭스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