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가 폐막한 3월 11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그로서는 마지막 기자회견이었죠. 중국 총리는 통상 10년(5년 임기 두 번)을 재임합니다. 올해 말 열리는 20차 공산당 당 대표대회에서 차기 총리가 결정되면, 내년 전인대 기자회견에는 차기 총리가 등장하겠죠.
◇리커창 “올해가 마지막 1년”
중국 총리들은 평소 말을 아끼지만, 마지막 기자회견 때는 속내를 드러내곤 합니다. 전임인 원자바오 총리는 2012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정치체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경제개혁의 성과도 사라지고, 문화대혁명 같은 비극이 재발할 수 있다”고 했죠.
“나를 알고 나를 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춘추(역사) 뿐이다(知我罪我 其惟春秋)”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반해 리 총리의 고별사는 담백했습니다. 그는 “올해는 이번 정부의 마지막 1년이자, 제가 총리를 맡는 마지막 1년”이라고 퇴임을 공식화한 뒤, “정부 업무에 대해 국민 대중이 인정하는 부분도 있고,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끝까지 총리직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했어요.
◇시 주석에 밀린 힘 없는 2인자
중국 총리는 국가 주석에 이은 서열 2위의 막강한 자리이고, 할 일도 많죠. 리 총리의 전전임이었던 주룽지 총리는 국유기업 개혁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을 성사시키며 중국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리 총리는 주룽지 총리나 원자바오 총리에 비해 힘이 없는 총리였어요. 총리가 담당하는 가장 큰 부문이 경제인데, 시진핑 주석이 이 분야를 직접 관장했습니다. 시 주석 친구인 류허 부총리가 미중무역전쟁, 제조업 업그레이드 등 주요 현안을 총괄했죠.
리 총리는 한때 시 주석과 1인자 자리를 놓고 경쟁했습니다. 시 주석보다 장관급 승진이 7년이나 빨라 유력한 1인자 후보로 꼽혔지만, 2012년 18차 당 대회 직전 당내 선거에서 시 주석에게 밀렸죠. 시 주석은 그런 그에게 임기 내내 실권을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실정 꿰뚫은 ‘사이다’ 발언
그는 약세 총리였지만 중국의 실정을 꿰는 직접적이고 날카로운 발언으로 여러 차례 화제를 모았죠.
2007년 랴오닝성 당서기 시절 미국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국내총생산(GDP) 통계는 인위적이어서 나도 안 믿는다. 전력 사용량, 철도화물 운송량 등으로 경제 상황을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이 발언에 기반해 ‘커창지수’라는 경제 지표를 만들기도 했죠.
작년 당 선전 매체들이 시 주석 집권기 빈곤 퇴치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을 때는 “14억 인구 중 6억명은 월수입이 1000위안(약 19만원)에 불과하다. 중소도시 가서 방 한 칸 임대도 못 할 수준”이라고 말해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중국 당국이 쉬쉬해오던 장쑤성 ‘쇠사슬 여성’ 사건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가슴 아프고 분노할 일”이라고 했죠.
◇시 주석 연임하면 누가 돼도 ‘약세 총리’
리 총리가 퇴임을 공식화하면서 차기 총리에 대한 여러 관측이 나와요. 중국 총리는 통상 부총리를 거친 인물이 발탁됩니다. 현 지도부(공산당 중앙정치국) 중에서는 왕양 정협 주석, 후춘화 부총리 등이 그런 인물이죠.
한정 제1부총리는 올해 말 68세여서 칠상팔하(七上八下·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퇴임한다) 원칙에 따라 퇴임할 가능성이 큽니다.
왕 주석이나 후 부총리는 시 주석과 파벌이 다른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파 사람들이죠. 시 주석 직계로 꼽히는 리창 상하이시 서기, 천민얼 충칭시 서기 등이 부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 주석이 올해 말 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에 성공해 1인 집권 체제를 강화하면 누가 되든 약세 총리 신세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요.
◇‘예스맨’ 허리펑, 경제 부총리 유력
경제 정책을 총괄해온 류허 부총리도 올해 70세여서 퇴임할 겁니다. 후임으로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주임을 맡고 있는 허리펑이 유력하다고 해요.
허리펑은 시 주석이 푸젠성 샤먼시 부시장으로 있을 때 재정국장으로 근무했는데, 시 주석이 1987년 결혼식 때 초대할 정도로 가까운 측근입니다.
류허는 시장 경제와 민영 기업을 중시하는 학자 풍 인물이지만, 허리펑은 전형적인 관료죠. 경제학 박사이긴 하지만 현직에 근무하면서 딴 학위로 전문성은 크게 떨어집니다.
유일한 강점은 시 주석 말이라면 불문곡직 따른다는 것이죠. 국유 기업을 중시하고 민영기업을 압박하면서 분배를 강조하는 시진핑식 좌파 경제노선이 더욱 굳어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