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로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면서 세계의 눈이 중국에 쏠려 있습니다. 러시아와 가까운 중국이 나서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폭주를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3월8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시진핑 주석과 화상 회담을 갖고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시 주석은 “프랑스와 독일의 중재 노력을 지지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만 말했는데, 선뜻 나서겠다는 취지는 아니었어요.
3월1일엔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전화를 해 중재를 요청했는데, 왕이 부장의 대답도 비슷했습니다.
◇미국 대응 위한 교두보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중국이 나서지 않을 것으로 봐요.
시진핑 주석은 2월4일 베이징 동계 올림픽 참석 차 방중한 푸틴 대통령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나토의 확장에 반대한다”며 러시아 손을 들어줬습니다. 당시 러시아가 침공 계획을 중국 측에 알려줬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도 있었죠.
지금에 와서 푸틴 대통령에게 “그만두시라”고 했다간 공들여 구축한 중러 협력관계에 금이 갈 겁니다.
중국은 마치 줄을 타는 분위기에요. 인도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규모 살상이 벌어지는 지금의 상황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서방 진영의 압박에 대응하는 교두보인 중러 협력관계를 포기할 수도 없죠.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다보니 줄타기를 하는 겁니다.
◇크름반도 합병 이후 밀착
사실 중국인들은 러시아를 아주 싫어합니다. 우리가 일본 싫어하는 것 못지않죠. 러시아는 청나라 말기 연해주를 비롯해 150만㎢의 영토를 강탈해 갔죠. 거의 프랑스 3배에 해당하는 면적입니다.
1950년대 말부터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 주도권과 국경 문제를 놓고 중소 분쟁이 벌어져 전쟁이 날 뻔한 적도 있죠. 당시 소련은 중국에 핵무기를 쓰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이런 두 나라가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름반도 합병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서방의 제재를 받고 투자가 끊기자 러시아가 중국에 손을 내밀었죠.
두 나라는 사실 경제적으로 상호보완성이 좋습니다. 시베리아의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는 중국에 꼭 필요한 에너지 자원입니다. 중국 입장에서도 러시아가 제조업 상품의 수출 시장이죠. 2015년 681억 달러였던 양국 무역 규모는 2019년 1108억 달러로 증가했습니다. 중국은 푸틴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모스크바~카잔 고속철 건설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도 했죠.
◇필요에 따라 서로 이용
미중 경쟁 와중에 양국관계는 더 공고해졌습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2013년 이후 40차례 가까이 만났어요. 코로나 19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거의 1년에 5번 정도 정상회담을 한 겁니다. 미국에서는 두 나라의 이런 관계를 ‘독재 동맹’이라고 부르죠.
엄밀하게 보면 양국 관계는 서로 필요에 따라 활용하는 정도이지, 신뢰와 집단 안보 등을 기반으로 한 진정한 동맹 관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2020년 러시아 싱크탱크 발다이클럽 연례회의에서 중러 군사동맹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우리는 군사동맹이 필요 없다. 이론적으로는 상상해볼 수 있겠지만…”이라고 대답했죠.
두 나라는 각종 이벤트를 통해 우의를 과시하고 있지만, 동맹관계 구축에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이를테면 중국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 2008년 그루지야 침공 당시 독립을 선포한 남오세티야, 압하스 등 친러 자치공화국들의 독립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아요.
러시아 역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만 독립에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무력 통일까지 지지하는 건 아니에요. 자칫 미중 간 전면전으로 번져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합니다.
◇러시아 내 ‘중국 경계론’
중국의 경제 규모는 러시아의 10배 수준입니다. 국방 예산도 러시아의 4배나 되죠. 러시아에서는 이렇게 가면 양국 간 격차가 더 벌어져 힘의 우위가 바뀔 것이라는 경계론이 적잖습니다.
과거 중국으로부터 뺏은 동시베리아 지역에서 국경 분쟁이 날 수도 있겠죠.
러시아 정보 당국은 2년 전부터 대대적인 중국 간첩 색출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런 경계의식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중러 동맹’이 아니라 ‘미러 동맹’을 구축해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리버스 키신저’라고 부르는 이런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중러 협력관계도 시험대에 올라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