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전·현직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걸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최근 전 세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엔칸토’의 수록곡 이야기입니다.
‘겨울왕국’의 ‘렛 잇 고(Let it go)’를 뛰어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히트곡이 나왔습니다. 지난해 11월 국내에서 개봉한 ‘엔칸토: 마법의 세계’의 수록곡 ‘입에 담지 마 브루노(We Don’t Talk about Bruno)’가 최근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위에 올랐지요. 1995년 ‘포카혼타스’의 ‘컬러스 오브 더 윈드(Colors of the Wind)’가 4위를 기록한 이후 빌보드 최고 성적입니다. ‘렛 잇 고’는 전 세계 모든 어린이가 따라 부를 정도였지만, 정작 빌보드 차트 성적은 5위가 최고 기록이었네요. ‘엔칸토’ 사운드트랙도 수록곡의 인기에 힘입어 빌보드 음반 차트에서 아델의 새 음반을 누르고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노래는 사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도 이변에 가깝습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삽입곡에도 일종의 흥행 공식이 있었지요. 남녀 주인공이 홀로 부르는 발라드나 사랑의 이중창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습니다. ‘렛 잇 고’와 ‘컬러스 오브 더 윈드’는 물론이고, ‘알라딘’의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와 ‘라이온 킹’의 ‘캔 유 필 더 러브 투나잇(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이 모두 그런 경우입니다. 그에 비하면 이번 ‘엔칸토’의 ‘입에 담지 마 브루노’는 등장 인물들이 함께 부르는 중창인데다, 전통적인 발라드보다는 라틴 음악과 힙합을 뮤지컬에 녹인 곡에 가깝지요. 성공 공식에서 벗어난 노래가 이번에는 돌풍의 주역이 된 셈입니다.
디즈니의 6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엔칸토’의 배경은 남미 콜롬비아의 깊은 산속 마을입니다. 저마다 하나씩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 마을의 마드리갈 가족에게 브루노는 금기에 가까운 이름이지요. 브루노는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행복이 아니라 불행까지 자꾸 예언하는 바람에 주변의 오해를 사고 결국 자취를 감추고 말지요. 이 수록곡은 눈 앞에 없는 인물을 입에 올려서도 안 된다는 금기의 노래인 셈이지요. 노래가 묘사하는 상황 자체가 지극히 연극적인데다가, ‘브루노 노노노(Bruno, no, no, no)’처럼 입에 착착 달라붙는 노랫말 덕분에 1억 회의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히트곡으로 부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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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칸토’ 돌풍의 원인을 찾다 보면 미국의 푸에르토리코계 뮤지컬 작곡·작사가이자 감독 배우인 린 마누엘 미란다와 만나게 됩니다. 미란다는 뮤지컬 ‘인 더 하이츠’와 ‘해밀턴’으로 에미상·그래미상·퓰리처상을 거머쥔 음악인입니다. 디즈니와는 애니메이션 ‘모아나’부터 작업해왔고, 이번 ‘엔칸토’에서도 8곡을 작사·작곡했지요. ‘입에 담지 마 브루노’의 경우에는 정식 녹음 이전에 노래의 10개 파트를 모두 자신의 목소리로 미리 녹음해 왔다고 합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라틴 음악과 힙합을 버무리는 것이야말로 그의 음악적 장기입니다.
개인적으로 미란다를 처음 알게 된 건 사실 뮤지컬이 아니라 미 드라마였지요. 미 드라마 ‘하우스’의 주인공 하우스가 약물 중독 문제로 정신 병원에 입원하는 여섯 번째 시즌이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하우스의 재기발랄한 룸메이트 역을 바로 미란다가 맡았지요. 2009년 미드 ‘하우스’의 시즌 6이 방영됐으니, 뮤지컬 ‘인 더 하이츠’를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인 직후였지요. 드라마의 병원 내 장기 자랑 장면에서도 인상적인 힙합 솜씨를 선보였지만, 21세기 뮤지컬의 새로운 귀재로 부상하리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인 더 하이츠’의 영화판에서도 그는 거리의 빙수 장수 역으로 직접 출연했지요.
이처럼 미란다가 독특한 건 작사·작곡가뿐 아니라 배우와 감독까지 장르와 영역 구분 없이 활동한다는 점입니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뮤지컬 영화 ‘틱 틱 붐(Tick, Tick, Boom)!’은 그의 연출 데뷔작이었지요.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스티븐 손드하임(1930~2021)과 조너선 라슨(1960~1996)의 뮤지컬 계보가 미란다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요. 장르와 영역 파괴의 다재다능은 분명 장점이지만, 자칫 자기 반복의 함정에 빠질 우려도 그만큼 높습니다. 과연 미란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21세기 뮤지컬의 새로운 황제가 될 수 있을까요. 화려한 수상 경력과 차트 성적만 놓고 보면 이미 황제에 등극한 것 같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