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전·현직 영화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걸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김성현 기자가 11월의 영화 추천작들을 골랐습니다. 관련 기사가 있는 경우에는 링크도 걸어 놓았습니다.
◇영화 ‘파워 오브 도그’
‘파워 오브 도그’는 토머스 새비지의 장편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원작에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에 대한 냉소적 시선이 교차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이제 카우보이는 그들이 보는 활동사진과 마찬가지로 연극에 지나지 않았다”는 구절이 그렇다. 흡사 서부 개척이 끝난 시대의 서부극 같다고 할까.
영화에는 장르의 트릭이 숨어 있다. 처음에는 서부극인 듯하지만 결말로 향할수록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일종의 설정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원작이든 영화든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후반에 등장한다. “개들은 그늘 속에 머물며 힘없이 낑낑대다가, 이내 묘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눈 앞의 광경에 감동한 피터는 몇 시간 전에 읽고서 마음 깊이 감동했던 시편 구절을 나직이 읊조렸다.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주시고 저의 하나뿐인 소중한 것, 개의 아가리에서 빼내주소서.’”(토머스 새비지 ‘파워 오브 도그’ 363쪽)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흡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환상적 이야기를 단편들로 잘게 쪼갠 것 같다고 할까. 최근 개봉한 ‘프렌치 디스패치’는 ‘로열 테넌바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작품으로 인기가 높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프랑스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가상의 주간지인 ‘프렌치 디스패치’ 기자들의 취재기를 묶은 옴니버스 형식이다. 감독 특유의 환상적인 공간·미술 감각뿐 아니라 프랜시스 맥도먼드, 틸다 스윈튼, 티모테 샬라메 등 도무지 한 작품에서 만나기 힘든 화려한 배우들을 모아서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영화 ‘이터널스’
흥행과 평가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개봉 20일 만에 관객 280만명을 돌파한 ‘이터널스’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올해 아카데미 3관왕 ‘노매드랜드’를 연출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신작. 앤젤리나 졸리·마동석 같은 화려한 출연진으로 개봉 이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반면 로튼토마토(47%), IMDB(6.8점) 등 해외 사이트의 반응은 대체로 낙제점에 가깝다. 감독의 작가주의와 블록버스터의 상업주의가 영화 안에서 매끄럽게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상충한다. 전작 ‘어벤져스’ 이후의 상황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한 대목도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 ‘디어 에반 핸슨’
선의의 거짓말로 우정을 꾸며낼 수 있을까. ‘디어 에반 핸슨’은 뮤지컬 형식에 사춘기 성장기를 녹여 넣은 영화. 토니상 6관왕에 올랐던 동명(同名)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불안 장애로 친구도 쉽게 사귀지 못하는 17세 소년 ‘에반 핸슨’(벤 플랫)이 주인공.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코너 머피’(콜튼 라이언)의 유일한 친구라는 오해를 받자, 머피의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우정을 꾸며 대기에 이른다. 온라인 시대에도 여전히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는 미국 10대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세버그’
프랑스 영화의 ‘누벨바그(새로운 물결)’를 상징하는 작품이 1960년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 이 영화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누비며 영자 신문을 팔던 단발머리 여주인공 역의 미국 여배우가 진 세버그(1938~1979)였다. 하지만 이후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세버그’는 이 여배우의 삶과 죽음을 다룬 실화 영화. 급진적 흑인 운동 단체인 ‘흑표당(Black Panther)’을 지지했다가 FBI의 표적이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처절하게 무너지는 세버그 역을 맡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애니메이션 ‘고장난 론’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인간의 친구들도 진화한다. 인형·동물을 거쳐서 로봇이 등장하더니 이젠 인공지능(AI)의 차례다. ‘고장난 론’에서는 첨단 기능과 소셜 미디어로 연결된 AI 로봇인 ‘비봇’이 아이들의 친구가 된다. 소심한 소년 바니도 ‘론’이라는 비봇을 선물 받지만, 정작 네트워크 접속이 불가능해서 말썽을 일으키고 만다. ‘이티(E.T.)’부터 ‘월-E’까지 전작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는 하지만, 디지털 세상과 우정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어서 무척 어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