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전·현직 영화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걸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김성현 기자가 최근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라스트 듀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라스트 듀얼’이 만약 흥미롭다면 절반은 원작 덕분입니다. 영화는 미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대(UCLA) 교수 에릭 재거의 동명(同名) 역사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요. 중세 문학 연구자인 저자는 14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장 드 카루주와 자크 르그리의 ‘결투 재판’ 사건에 매료되어 파리와 노르망디의 필사본 보관소를 샅샅이 뒤지고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들을 직접 방문해서 책을 완성했지요.
영화에서 맷 데이먼이 맡은 역할이 ‘결투 재판’의 고소인 장 드 카루주, 아담 드라이버의 역이 피고소인 자크 르그리입니다. 실제로 둘은 전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이자 친구였지만, 영지 배분을 둘러싼 문제로 줄곧 갈등을 겪었습니다. 급기야 자크가 장의 아내 마르그리트를 겁탈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자, 이들은 프랑스 국왕 앞에서 공개 결투를 벌이게 됩니다. 1386년 12월 29일 생마르탱데샹 수도원에서 열렸던 실화입니다. 이날 둘 중 하나는 목숨을 잃고 말았지요.
‘결투 재판’은 말 그대로 결투에서 이긴 승자는 무죄가 되고, 패자는 죽음으로 처벌 받는 중세의 독특한 관습입니다. 죄형 법정주의와 무죄 추정의 원칙이 확립된 지금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지만, 신은 죄 없는 자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중세의 믿음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결투 재판은 ‘신의 심판(judicium Dei)’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파리고등법원의 허가를 받은 마지막 ‘결투 재판’입니다. 책과 영화에 ‘라스트 듀얼(최후의 결투)’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도 생생하게 묘사하지만, 이 결투 재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점잖고 신사적인 창술 시합과는 사뭇 달랐다고 합니다. “이들 사이의 전투는 가차없었을 뿐만 아니라 규칙도 없었다. 목숨을 건 결투는 우호적인 마상 창 시합이 아니다. 따라서 상대의 등을 찌르거나, 투구의 눈구멍에 칼을 박아 넣거나, 모래를 뿌려 상대방의 눈을 멀게 하거나,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힘껏 걷어차거나, 미끄러져 넘어진 상대를 위에서 덮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에릭 재거 ‘라스트 듀얼’ 258쪽) 저자의 묘사에 따르면 당시 결투 재판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혈투였던 셈이지요.
르그리가 성폭행 사건의 진범인지에 대해서는 당대 귀족 사회는 물론, 후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적지 않았습니다. 재거의 책이 흥미로운 건 르그리의 변호인이 남긴 비망록을 직접 분석했다는 점입니다. 요즘 말로는 피고 측 변호인의 메모를 입수한 셈이니 사건의 실체가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지요. 하지만 저자는 변호인조차 르그리의 유무죄 여부에 대해서는 좀처럼 확신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건의 진상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사서와는 달리 영화는 진실의 모호성을 드러내기에 그리 적합한 장르는 아닙니다. 하지만 여든넷의 노장 리들리 스콧 감독은 지극히 영화적인 방식으로 이 모호성을 전달하지요. 사건의 주인공인 3명의 시점에서 같은 이야기를 3차례 반복해서 보여주는 구성 방식입니다. 관객들은 남성 피해자(장 드 카루주)와 남성 가해자(자크 르그리), 여성 피해자(마르그리트)의 관점에서 사건의 이면에 조금씩 접근하게 되지요. 얼핏 1951년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羅生門)’과도 흡사한 구성 방식입니다.
하지만 진실의 상대성을 강조했던 ‘라쇼몽’과 달리, ‘라스트 듀얼’에서는 마르그리트의 사연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에 ‘진실은(the truth is)’이라는 자막을 추가했습니다. 진정한 피해자인 여성의 관점에 설 때 사건의 온전한 핵심에 다가갈 수 있다는 완곡한 메시지입니다. 피해 여성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중세 재판정의 잔인한 심문 장면에서는 현대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몰인정한 ‘2차 가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영화가 현재성을 잃지 않는 건 마지막 장 덕분일지도 모르지요. 그런 의미에서는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시대에 다시 보는 중세 결투극이라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