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게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디코드+’는 조선일보 뉴스레터 ‘최원석의 디코드’의 ‘네이버 프리미엄’용 별도 기사입니다. 매주 수요일 나옵니다.

스마트폰에 밀려 축소되던 디지털카메라(디카) 시장이 최근 소멸 위기에 놓였다는 것은 새로울 게 없지요. 세계 디카 시장은 2010년 1억2146만대로 정점을 찍고 나서 계속 떨어져 작년에는 759만대에 그쳤습니다. 정점 대비 6% 수준입니다. 볼륨이 쪼그라들면서,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일본 업체들도 고전하고 있지요.

이와 관련해 일본의 한 디카 기업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바로 올림푸스입니다.

올림푸스는 이른바 디지털카메라 3대장 즉 캐논·니콘·소니의 반열에는 들지 못했지만, 2000년대 한국에서 4년 연속 디카 부문 판매 1위 브랜드에 오르기도 했었죠. 카메라를 만들어 판 지 80년이 넘을 만큼 역사가 깊은 업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년 한국에서 철수했고 뒤이어 자사 영상사업(디카) 부문을 매각한다고 발표해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1년 넘게 지난 현재, 올림푸스 상황은 어떨까요? 디카 부문의 적자 누적을 견디다 못해 사업부까지 팔아버렸으니 고전하고 있을까요? 그 정반대입니다. 역대 급의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림푸스는 지난 11월5일 올해(정확히는 2021년 4월~2022년3월) 연결 순이익(국제회계 기준)이 전년보다 8배나 많은 1090억엔이 될 전망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종래 예상을 뛰어넘은 것으로, 2018년 3월기 국제회계 기준 이행 후 최고이익을 기록할 전망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실적이 좋아진 이유는 코로나 사태로 연기됐던 병원 검사·치료가 재개되면서, 주력인 내시경이나 치료기기 판매가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매출은 전년보다 17% 증가한 8560억엔, 영업이익은 76% 증가한 1440억엔으로 종전 예상을 각각 260억엔, 40억엔 웃돌았습니다.

실적을 견인한 것은 올림푸스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내시경 사업입니다. 이번 연도 영업이익은 1270억엔으로 전년보다 29% 늘어날 전망입니다.

올림푸스에서 내시경사업과 양대 축을 이루는 치료기기 사업도 호조입니다. 올해 영업이익은 550억엔으로 전년보다 80% 증가할 전망입니다.

성장을 지지한 것은 해외 부문인데요. 주력 시장인 미국 이외에도 유럽·중국 등에서 매출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각 사업의 고정비 절감 외에도 부담이 컸던 영상사업의 매각과 국내 인력 감축도 이익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2019년 취임한 다케우치 야스오 사장은 적자 늪에 빠져 있던 영상사업을 작년에 매각했고, 올해 3월에는 일본 국내에서 대규모 희망퇴직제도를 실시해 일본 국내 직원의 6%에 해당하는 950명을 감원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올림푸스에는 내시경·치료기기 부문 뿐 아니라 현미경이나 산업용 측정장치 등을 만드는 과학사업 부문이 있는데요. 이 부분마저 매각해 의료 분야에 전사 역량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기존 사업에서는 인력을 감원했지만, 첨단 의료기기 분야에 필요한 인재들은 계속 채용할 예정이지요.

즉 올림푸스는 최근 적자가 누적되던 카메라 사업을 매각한 이후에 훨씬 더 잘나간 셈입니다. 물론 올림푸스는 원래부터 내시경·치료기기가 중심이었으니, 디카부분을 잘라내고 더 잘나가는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2019년(2019년4월~2020년3월) 기준으로 올림푸스의 디카 부문 매출(436억엔)은 회사 전체의 5% 수준에 불과했는데, 적자 폭이 매출의 절반 수준에 이를만큼 심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디카시장의 지속적인 축소에 따라 지금과 같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는 것 자체가 경영진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올림푸스는 2차대전 전인 1936년 자사렌즈를 사용한 카메라를 처음 발매했고, 1959년에는 소형·경량을 특징으로 하는 기종을 시장에 투입하면서 캐논·니콘과 함께 카메라 시장을 견인해 왔거든요. 그런 역사가 있는 사업부문을 단번에 쳐냈다는 것은 그만큼 올림푸스가 경영능력이 살아있다는 방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올림푸스는 니콘·캐논 등과 함께 광학기술로 성장해 온 업체입니다. 하지만 그 광학기술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고 매출을 늘리고 이익을 내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그 도구가 언제까지나 디지털카메라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어차피 디카 시장은 사라져가는 것이니까요. 얼마 안 되는 시장에서 출혈 경쟁하느니 디카 사업을 접고, 본인들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시장 자체도 계속 커지는 의료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것이죠. 올림푸스는 이미 광학기기·카메라 시장의 변화에 잘 준비해 왔던 것이고, 디카시장에서 철수한 것이 오히려 자사에 최선의 결과를 안겨다 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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