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전·현직 영화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걸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의 주제는 김성현 기자의 ‘007 시리즈 주제가’입니다.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는 ‘007 노 타임 투 다이’로 제임스 본드로서 강렬한 마침표를 찍는다. /유니버설 픽쳐스

‘노 타임 투 컷(No time to cut)’. 007 시리즈 최신작인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보고 나서 처음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시리즈 출연작이었지요. 설마 편집할 시간이 촉박했던 건 아닐 테고, 작별의 아쉬움 때문이었을까요. 장장 2시간 40분의 대하 드라마를 펼쳐냈지요. 산전수전 공중전을 불사하는 초반 30분의 액션은 호쾌하기 그지없었지만, ‘반지의 제왕’도 아니고 2시간을 넘어가니 서서히 인내심의 한계가 오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장수 첩보원의 기나긴 고별사를 듣는 것만 같았다고 할까요.

007 살인번호(Dr. No)

하지만 이 시리즈에는 숨은 매력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띠디리딩딩’ 하는 기타 소리로 시작하는 유명한 ‘제임스 본드의 테마(James Bond Theme)’이지요. 1962년 첫 편인 ‘007 살인 번호(Dr. No)’부터 제임스 본드가 정면을 돌아보며 권총을 발사하는 도입부 장면에서 흘러나왔던 곡입니다. 금속성의 기타 소리가 살짝 촌스럽거나 반복적이라는 느낌도 있었지만, 지금은 첩보물을 자동 반사적으로 떠올릴 만큼 시리즈를 상징하는 멜로디가 됐지요. 이 주제를 다양한 버전으로 편곡한 아티스트들도 많은데 그 가운데 일렉트로닉 계열의 음악인 모비(Moby)의 흥겨운 리메이크도 무척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이 테마 음악 외에도 007 시리즈는 매편마다 별도의 주제가를 삽입해서 관객의 기대감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이를테면 로저 무어 주연의 1973년 ‘007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에서는 폴 매카트니가 동명 주제가를 불렀지요. 듀란듀란의 ‘뷰 투 어 킬(A View to a kill)’, 아하의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 아델의 ‘스카이폴(Skyfall)’, 빌리 아일리시의 ‘노 타임 투 다이’까지 세대를 대표하는 팝스타들이 이 시리즈의 주제가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주제가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세대를 유추할 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빌리 아일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사실은 듀란듀란이 솔직한 대답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처럼 007은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음악과 매번 새롭게 내놓는 주제가가 다른 경우입니다. 첩보물이라는 틀은 그대로 두면서도 주인공을 교체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007 시리즈의 공식과도 닮았지요. 어쩌면 전통과 혁신의 절묘한 공존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장수 비결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