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수난시대가 쉽게 끝나지 않을 조짐입니다. 이번에는 본사가 있는 저장성 항저우시의 당서기 저우장융(周江勇·54)이 8월21일 기율·법규 위반 혐의로 국가감찰위원회에 체포됐어요.
◇끝나지 않는 수난시대
저우 서기의 낙마는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 회장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형제, 친척 등을 포함한 일가가 작년 11월 알리바바 산하 핀테크 기업 앤트그룹의 상장을 앞두고 이 회사 주식 수백억원어치를 사들인 혐의를 받는다고 해요.
조사 결과에 따라 알리바바와 마윈 회장이 다시 한번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알리바바 손보기는 마윈 회장이 작년 10월 상하이 금융 서밋 연설에서 금융 당국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 도화선이 됐죠.
340억 달러 규모로 예상된 앤트그룹 상장이 갑자기 취소됐고, 알리바바에 대한 대대적인 반독점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올 4월 3조원 규모의 천문학적인 벌금이 부과됐죠.
◇“시장 파워 믿고 당 능멸하려 하나”
한때 중국의 희망이었던 알리바바가 이처럼 수난을 겪는 데는 마윈 회장이 중국 금융 당국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 주요인입니다. 하지만 마윈 회장 특유의 대담하고 직설적인 행보에 대한 중국 최고지도부의 불만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8월20일 자에서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 공산당은 민영기업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으로 변했고, 시장의 힘에 대한 경계 의식도 커졌다”면서 “마윈 회장이 이런 분위기를 읽지 못했다”고 썼더군요. 당의 지지와 보호 아래 큰 민영기업이 이제는 시장의 힘을 등에 업고 당을 능멸하려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커졌다는 겁니다.
알리바바는 1999년 창립 이후 중국 당국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죠. 원자바오 총리는 2010년 알리바바를 방문한 자리에서 ‘배우는 학생’을 자처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2007년 저장성 당서기로 있다가 상하이시 당서기로 자리를 옮겼는데, 상하이로 간지 두 달 만에 대표단을 이끌고 알리바바 본사를 방문해 “창의력으로 무장한 알리바바의 리더들이 기업 발전의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격찬을 했죠.
◇최대 실수는 트럼프 당선인 면담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전·현직 관료와 베이징의 정부 자문역 등을 상대로 한 취재결과를 바탕으로 마윈 회장이 중국 공산당의 눈 밖에 나는 계기가 된 몇 가지 사건을 제시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2015년9월 시 주석 방미 당시 시애틀에서 열린 미중 기업인 좌담회 자리였어요. 지니 로메티 IBM 회장 등 양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참석해 시 주석 앞에서 발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시 다른 기업인은 모두 약속한 3분 안에 발언을 끝냈는데, 마윈 회장은 중국 기업이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10분이나 장황하게 얘기를 했다고 해요.
시 주석은 불쾌한 표정이었고, 이후 마윈 회장은 이런 행사에 초청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기업가가 된 마윈 회장은 2015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초청으로 엘리제궁을 방문했고, 2016년에는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죠. 마윈 회장은 다른 중국 기업인들과 달리 늘 요란한 행보를 했는데, 중국 고위층이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실수는 2017년 1월 뉴욕을 방문해 당시 당선인 신분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일이라고 해요. 중국 정치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을 만난 건 마윈 회장의 가장 큰 실수”라고 했습니다.
◇“미국 기업가처럼 행동한 게 문제”
작년 6월 코로나 19가 창궐했던 안후이성 허페이를 찾아가 대규모 훠궈 파티로 고생한 의료진을 위로한 것도 중국 고위층을 당혹스럽게 했다고 해요. 베이징 지도부가 찾아가 생색을 내야 할 자리를 마윈이 대신해 버렸다는 겁니다.
신중하고 조용하게 움직이지 않고 마치 미국 기업가처럼 행동한 것이 마윈 회장의 ‘원죄’였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