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성 정저우(鄭州)는 중국 중부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로 인구가 1200만명을 넘는 대도시입니다. 황허(黃河) 하류에 접한 이 도시가 지난 7월20일 하루 최고 550㎜에 이르는 기록적인 폭우에 시내 전역이 물에 잠기는 큰 피해를 당했죠.
시 중심부를 지나는 지하철 5호선의 한 전철역은 지하 터널까지 빗물이 쏟아져 들어와 운행 중인 객차가 물에 잠겼습니다. 가슴까지 치솟은 물에 승객들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죠. 정저우 지하철 5호선은 2019년 5월에 개통한 신규 노선입니다.
◇외신 기자 에워싼 의문의 남자들
베이징과 상하이에 있는 외국 방송사와 통신사 특파원들이 수해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줄줄이 정저우로 달려갔죠. 그런데, 취재 현장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애국 청년’ ‘애국 민중’이라는 신원 불명의 중국인들이 나타나 특파원들을 위협했고, AFP 통신 기자는 촬영 영상 삭제를 강요당하기까지 했답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 벨레의 마티아스 베링거 기자도 7월24일 봉변을 당했는데, 마침 그 현장을 생생한 영상으로 담아 트위터에 올렸어요.
마티아스 기자는 LA타임스 베이징 특파원과 함께 현지 주민들을 취재하던 중이었는데, 7~8명의 중국 남성과 여성이 그를 둘러쌉니다. 한 남성은 그의 휴대폰을 뺏으려고 하고, 다른 남성은 그가 현장을 떠나지 못하도록 팔을 붙잡습니다.
그리고는 “왜 중국 이미지에 먹칠을 하느냐” “중국을 악마화하지 마라” “왜 유언비어를 퍼뜨리느냐”고 쏘아붙였습니다. 검은 티셔츠를 입은 한 남성은 “증국의 좋은 측면을 보도하라”고 주문하더군요.
◇소셜미디어로 선동한 공청단
재해 취재를 하러 온 외신 특파원들을 지방 도시 주민들이 이렇게 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허난성 공산주의청년단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이런 사태를 선동한 흔적이 발견됐죠.
사건은 발단은 영국 BBC 상하이 특파원의 현장 보도였습니다. 그는 지하철 5호선에서 살아남은 시민들을 상대로 한 생생한 인터뷰를 전하면서 “어떻게 지은 지 10년도 안 된 지하철에 빗물이 대량으로 스며들어 승객들이 플랫폼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느냐는 게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죠.
중국은 이 보도를 문제 삼았습니다. ‘BBC유언비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상황이 벌어지자마자 구조대가 곧바로 달려갔는데, 승객들이 왜 죽음을 기다렸다고 했느냐”고 비난을 한 거죠.
물이 차오르자 많은 승객이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했고 실제로 14명이 물에 잠겨 숨졌는데, 왜 이 보도가 유언비어라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인구 1200만명 대도시가 통째로 물에 잠기고, 지은 지 2년밖에 안된 지하철에서 후진국형 사고가 벌어진 현장을 보도해 중국 체면에 먹칠을 한 것이 기분 나쁘다는 뜻이겠죠. 이 과정에서 도이체 벨레 기자가 BBC 기자로 오인돼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붙잡아 때려 죽이자” 섬뜩한 댓글
공청단 소셜미디어 댓글을 보면 섬뜩해요. “떼로 몰려가 둘러싸고 때려주자” “붙잡아서 때려죽이면 불법이냐, 아니냐” 등의 글이 올라와 있어요. 떼 지어 몰려다니면서 서양과 관계된 것이라면 보이는 대로 때려 부쉈던 청나라 말기 의화단을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보면 신장 위구르족 탄압, 홍콩 민주주의 등과 관련해 사사건건 중국을 비판하는 서방 언론이 밉겠죠. 이런 누적된 불만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쏟아낸 겁니다. 이런 일이라면 안빠지는 환구시보는 “서방 언론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썼더군요.
하지만 언론 보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취재 중인 서방 특파원을 둘러싼 채 겁 주고 위협하는 것이 중국에 무슨 득이 될까요?
“이런 위협 장면이야말로 중국을 악마화시키는 일이다.” 마티아스 기자 트위터에 올라온 이 댓글이 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