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전·현직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걸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14일 개봉하는 영화 ‘랑종’ 이야기입니다.
많은 영화인들이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지만, 나홍진(46) 감독은 거꾸로 태국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는 ‘추격자’(2008년·관객 507만명)와 ‘황해’(2010년·226만명) ‘곡성’(2016년·687만명)의 스타 감독이지요. 이번 프로젝트는 나 감독이 각본·제작을 맡고, 태국의 반종 피산다나쿤(41) 감독이 연출한 ‘랑종’입니다. 14일 개봉하는 ‘랑종’은 태국어로 ‘무당’이라는 뜻입니다. 한국과 태국의 합작 영화라는 점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이지요.
태국 북동부 시골 마을에서 대를 이어 조상신을 섬기던 랑종 ‘님’(싸와니 우툼마)이 조카딸 ‘밈’(나릴야 군몽콘켓)의 이상 증세를 눈치 채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합니다.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의 비밀스러운 가족사라는 설정은 전작과 흡사하지요. 이 때문에 영화 초반은 언뜻 ‘곡성’의 태국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작과의 공통점이 아니라 차별점이야말로 나 감독이 고심을 거듭한 대목입니다. 그는 지난 2일 시사회 직후 간담회에서 “연출작이 늘어날수록 반복도 생겨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민도 커진다. 저부터 ‘랑종’이 ‘곡성’과 흡사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고 말했지요. 그는 “무속을 담은 설정이 원안(原案)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지역 소도시의 느낌으로는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아예 한국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반종 감독 역시 2004년 데뷔작 ‘셔터’부터 공포 영화를 선보였습니다. 2013년에는 코믹 공포물 ‘피막’으로 역대 태국 영화 최고 기록인 1000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지요. 태국 현지에서 영상으로 간담회에 참석한 반종 감독은 “나홍진 감독의 ‘빅 팬(big fan)’이고 그는 내게 ‘아이돌’과도 같은 존재”라며 “‘추격자' 상영 직후 처음 만났을 때에도 내가 연출한 모든 영화의 DVD를 드렸다”고 말했습니다. 양국(兩國) 공포 영화의 대표 감독들이 의기투합한 셈입니다.
‘랑종’은 ‘곡성’만큼 무서운 영화일까요. 결론적으로 ‘랑종’은 전작에서 보여준 공포의 한계치를 거뜬히 뛰어넘습니다. 2일 시사회에서도 상영 시간(2시간 10분)이 끝난 뒤 역설적인 안도의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까요. 민속 신앙과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집요하게 되묻는 서사 구도는 흡사합니다. 공포의 점증법(漸增法)을 통해서 잔혹하고 충격적인 장면들을 후반에 쏟아 넣는 미괄식 구성도 닮은꼴입니다.
하지만 ‘랑종’은 영아 납치와 동물 학대 같은 극단적 설정을 통해서 표현 수위를 한층 높였습니다. ‘곡성’에서 출발해서 ‘블레어 위치’(가짜 다큐멘터리적 구성)와 ‘엑소시스트’(퇴마 의식)를 거쳐서 마지막에는 ‘워킹 데드’ 같은 좀비물로 귀결되는 느낌도 들지요. 전작 ‘곡성’에서 인간의 믿음과 구원 가능성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그 끈마저 싹둑 잘라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한층 염세적이고 비관론적입니다. 당연히 청소년 관람 불가이지요.
이날 간담회에서는 영화의 표현 수위와 극단적 묘사에 대한 질문도 쏟아졌습니다. 반종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도 표현 수위를 놓고 많은 언쟁이 있었지만, 잔혹하고 선정적인 요소를 팔아서 흥행할 마음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나 감독은 “제가 오히려 말리는 입장이었고 결과적으로 반종 감독이 거기에 동의해주셨다. 영화를 보면서 눈 감으셨을 수도 있지만 사운드와 효과로 대신해서 결과적으로 표현 수위가 낮아진 점도 있다”고 말했지요.
그렇다면 ‘랑종’은 ‘곡성’보다 빼어난 영화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전작에서 믿음과 구원 가능성에 대한 문제 의식을 극한까지 몰고 갔다면, 이번에는 그 주제가 빠져 있다는 점이 다소 마음에 걸립니다. 또 공포의 여러 구성 요소들을 나열식으로 늘어놓았다는 점도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공포를 위한 공포가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고 할까요.
쉽게 대답하기는 힘들지만, 전작보다 훨씬 반응이 극명하게 갈라질 수밖에 없는 문제작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공포 마니아를 자청한다면 장르적 한계를 넘나드는 수작(秀作)이라고 반기겠지만, 성인 관객이라고 해도 심신 허약을 호소한다면 끔찍함에 방점이 찍힐 수도 있겠지요. 그 잣대는 딱 한 가지. ‘2시간 10분을 무사히 버틸 수 있을까’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