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전문지 ‘닛케이 크로스텍’이 6월 28일 기사를 하나 냈습니다. 테슬라의 가장 강력한 경쟁 차종으로 평가 받는 폴크스바겐 ‘ID.3’를 테어다운(teardown)한 뒤 이 차의 특징을 쓴 것이었죠. 테어다운이란, 자동차 업계 등에서 경쟁력을 분석하기 위해 해당 제품을 샅샅이 뜯어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따르면 폴크스바겐과 테슬라의 전기차 만들기는 꽤나 다릅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기존 자동차 업계의 헤리티지를 갖고 있지 않은 테슬라가 좀 더 폐쇄적이고 자사 제품에 최적화·특화된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고요. 폴크스바겐은 처음부터 대량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 코스트 절감에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ID.3는 C세그먼트(segment), 즉 한국시장 기준으로는 준중형급에 속하는 해치백 타입의 전기차입니다. 테슬라의 준중형 해치백 ‘모델3’의 대항마죠. ID.3는 폴크스바겐에서 전용 플랫폼 ‘MEB(Modularen E-Antriebs-Baukasten, 전기 파워트레인 모듈의 독일어)’로 만들어진 첫 차량입니다. 모터·기어박스·인버터를 일체화한 전동 액슬을 차량 뒷쪽에 탑재하고 있고, 따라서 후륜 구동이 기본입니다.
폴크스바겐은 ID.3 발표 이전에도 ‘e-업!’ ‘e-골프’ 같은 소형·준중형 전기차를 만들어 왔는데요. 이것들은 모두 폴크스바겐의 가로배치 엔진 FF(Front engine Front drive·엔진을 앞쪽에 얹은 전륜구동) 플랫폼인 MQB를 활용한 것이었습니다. 전기차에 최적화된 건 아니었지요. MEB는 부품 배치를 전기차에 최적화함으로써 넓은 차내 공간을 확보했고요. 리튬이온 배터리를 차량 바닥에 배치해 더 많은 용량을 탑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폴크스바겐 그룹은 2029년까지 MEB 기반 전기차를 누적으로 2000만대 생산할 계획입니다. 그룹 내 다양한 브랜드를 통해 생산을 늘려나가는 것은 물론, 포드 등 타사에도 플랫폼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생산 규모를 늘림으로써 비용을 낮추겠다는 생각이죠.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 CEO는 ID.3에 대해 “(폴크스바겐의 주력 엔진 차량인) ‘골프’ 디젤과 비슷한 가격대를 실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가격은 독일에서 3만1960유로부터 시작하는데요. 독일에선 전기차에 보조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이를 포함하면 골프 디젤차보다 싸집니다.
닛케이크로스텍은 ID.3 테어다운을 통해 테슬라 모델3와의 차이점을 분석했는데요. 이게 가능했던 것은 이 매체가 작년 초에 모델3를 이미 테어다운해 보았기 때문이죠. 그 때 보고서에서 나온 내용이 바로 “모델3의 통합전자제어 플랫폼이 (기존 자동차 업계에서 기술력 최강인) 폴크스바겐이나 도요타보다 6년 앞섰다'였습니다.
이번에 나온 기사는 전기차의 제조 경쟁력에 대한 부분이었는데요. 전기차의 심장부인 리튬이온 배터리 팩을 중심으로 폴크스바겐 전기차 플랫폼의 확장성, 그리고 테슬라와의 차이 등을 기술했습니다.
ID.3의 배터리 용량은 45kWh, 58kWh, 77kWh의 3종류인데요. 닛케이 크로스텍이 독일에서 직접 주문해 뜯어본 것은 중간급인 58 kWh 모델이었습니다. ID.3에서 떼어낸 배터리팩의 무게는 374.5 kg, 치수는 길이·너비·높이가 각각 1370×1450×125mm였습니다.
재밌는 것은 배터리 공간이 모델에 상관 없이 최대 용량인 77kWh에 맞춰져 있었다는 겁니다. 45·58kWh 급은 배터리 공간 일부가 비어 있는 형태였죠. 즉 77kWh 모델이면 외부의 금속 케이스를 꽉 채우는 대용량 배터리팩을 사용하는 것이고요. 45kWh나 58kWh 제품에서는 같은 크기의 금속 케이스를 사용하되 내부의 배터리 모듈 양만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는 77kWh 대용량 모델에는 최적화 설계라 할 수 있지만, 45·58kWh 모델엔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죠. 폴스크바겐은 배터리 용량이 다른 각각의 모델마다 최적화한 것이 아니라, 자사의 전기차 전체를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하는데 최적화한 설계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나 많은 양을 얼마나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어낼 것인가에 회사의 역량을 쏟아부은 설계, 부분 최적화 대신 전체 최적화에 올인한 것이지요.
닛케이 크로스텍은 배터리팩 설계와 관련해 테슬라와의 차이를 세 가지로 들었습니다. (1)대량생산의 용이성 (2)배터리팩의 보호 (3)부품조달 방침이 그것입니다.
첫 번째 차이점은 대량생산의 용이성입니다. ID.3와 모델 3는 모두 리튬이온 배터리팩을 차량 바닥에 배치하지만, 분리 방법이 크게 다릅니다.
모델 3의 경우, 내장 부품을 제거하지 않으면 배터리팩을 떼어낼 수 없습니다. 차량 내부의 시트나 바닥 매트를 떼어내고 차체와 배터리팩을 고정하고 있는 나사를 떼어내야만 배터리를 분리할 수 있지요. 반면 ID.3는 배터리팩을 고정하는 모든 볼트가 차체 바닥의 외부에 있습니다. 공장에서 배터리팩을 조립할 때의 작업성을 생각하면, ID.3가 훨씬 쉽고 대량생산에도 적합해 보입니다. 또 폐차 후에 배터리만 떼어내 재활용할 때도 ID.3 방식이 더 편리하겠죠.
두번째 차이점은 충돌사고 등에서 배터리팩을 보호하는 방식입니다. ID.3의 배터리팩은 알루미늄 합금 보강재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언더 바디의 구조를 포함해 2중으로 배터리팩을 보호합니다. 모델3는 별도의 보강재가 없고 언더바디 구조만으로 충격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부품 조달 방침입니다. 테슬라는 부품 개발을 대부분 자체적으로 하지만, 폴크스바겐은 엔진차 시대부터 서플라이어가 개발한 부품을 가져다 최종제품으로 완성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 왔습니다.
그 차이가 충전기나 DC-DC 컨버터 등의 배치에서 드러납니다. 모델 3는 이러한 부품을 배터리팩의 후방 상부에 마련한 ‘펜트 하우스’라고 부르는 박스에 탑재, 고전압 변환·분배 기능을 집약해 놓았습니다. 반면 부품마다 서플라이어가 다른 ID.3는 이런 일체화를 하지 않고 배터리팩이나 충전기, DC-DC 컨버터를 따로따로 배치해 놓았습니다.
세 가지 차이로 볼 때, 폴크스바겐과 테슬라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범용화된 표준 부품을 쉽고 저렴하게 사용한다는 측면에서는 폴크스바겐의 방법이 더 유리해 보입니다. 반면 부품을 탑재할 때의 공간 효율이나 기능 집약 관점에서는 테슬라가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양쪽의 설계 사상 차이가 기존 자동차업계와 테슬라의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결론은 알 수 없지만 하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폴크스바겐이 ID.3를 내놓기까지 테슬라 차량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장단점을 아주 깊이 연구했다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각각의 모델에 대한 부분 최적화를 희생하더라도 대량생산·원가절감에 가장 유리한 쪽으로 전체 최적화를 했다는 것은 폴크스바겐 같은 연간 1000만대 회사의 강점이지요. 그리고 폴크스바겐은 바로 그런 강점을 전기차 생산에서도 극대화함으로써, 테슬라에 충분히 맞설 수 있다고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선 기존 서플라이어들과의 관계에 얽매여 있는 회사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전기차 시대에는 내연기관차 시대의 만능해결사였던 ‘플랫폼'이라는 개념이 그렇게까지 통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연기관차에 비해 구조가 단순한 전기차에서는 플랫폼화에 따른 성능 대비 비용절감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지요.
테슬라의 제작방식을 살펴보면, 어떤 의미에서 과거 애플의 제품 만들기와 유사한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제조의 범용성에선 불리한 부분이 있지만, 이를 최적화를 통해 극복해 나가는 방식이지요. 그러나 자동차는 전자제품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안전과 더 직결되며 제조에 훨씬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이 투여되지요. 따라서 테슬라가 자동차 세계에서 애플과 같은 존재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테슬라를 벤치마킹해 등장한 ID.3에서 업계 전체가 배울 점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폴크스바겐이 모델3를 벤치마킹했듯, 테슬라도 ID.3를 뜯어보고 대량생산이나 원가절감 방법을 배우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업계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배워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전기차 대중화 시대가 더 앞당겨질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