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는 은어를 '앞잡이'로 이용해 잡는 낚시법인 '놀림낚시'로 잡는다./조선일보DB

“죽어서 더 이상 못 먹는 것은 상관없지만, 상놈 입에 들어갈까 슬프다.” 조선시대 숨 넘어가던 영남의 한 선비가 남긴 유언이랍니다. 이처럼 은어(銀魚)는 여름 별미로 대접받던 생선입니다. 지금 그러니까 6월부터 한여름까지 제철이죠.

은어가 ‘수중군자(水中君子)’ ‘민물고기의 귀족’라고도 불리며 임금에게 진상까지 된 건 물론 맛이 좋기 때문입니다. 은어를 영어로도 ‘스위트 피시(sweet fish)’라고 부르는 걸 보면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그 맛을 인정 받은 모양입니다.

은어가 귀한 대접을 받은 건 맛도 맛이지만 특유의 수박향 때문입니다. 은어는 몸에 수박을 연상케 하는 풋풋한 냄새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섬진강 같은 1급수에서 물이끼만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생선과 같은 비린내나 잡냄새가 없습니다. 은어 낚시꾼들은 “손에 묻은 은어 수박향이 바람결에 실려 코를 스칠 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즐겁다”고 말하지요. 물론 오이 싫어하는 분이라면 질색할 듯합니다. 수박향이 오이향과 비슷하니까요.

수박향이 몸에 밴 은어는 구이, 회, 튀김 등 어떻게 요리해도 맛있다./조선일보DB

◇은어로 은어 잡는 ‘놀림낚시’

은어가 낚시꾼들에게 사랑 받는 건 독특한 잡는 방식 때문입니다. 은어는 돌에 낀 이끼만 먹고 삽니다. 지렁이 같은 미끼를 이용한 낚시가 불가능하죠. 그래서 인간은 ‘놀림낚시’라는 낚시법을 고안했습니다. 미리 잡아둔 은어 주둥이에 낚시바늘을 끼웁니다. 그러고 나서 같은 낚싯줄에 연결된 세발갈고리 바늘을 배지느러미에 고정시킵니다. 이렇게 낚싯줄에 연결된 은어를 또 다른 은어가 있는 강바닥 바위 뒤로 침투시킵니다.

강바닥에서 물이끼를 뜯던 은어가 자기 구역을 침범한 은어를 공격합니다. 아래에서 위로 치솟으며 배를 들이받으려는 순간, 세발갈고리바늘에 코를 꿰이고 말지요. 낚시꾼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낚싯줄을 끌어당깁니다. 친구(은어)를 이용해 친구(은어)를 잡는다 하여 일본에선 ‘도모즈리(友釣)’라고 부르지요. 어찌 보면 잔인한 이름이죠.

은어는 모천회귀어입니다. 바다로 나갔다가 온 힘을 다해 고향으로 돌아온 부모 은어들이 낳은 알에서 태어나지요. 9~11월 부화한 새끼 은어들은 강물이 차가워지고 겨울이 다가올 무렵 바다로 이동합니다. 바다에서 겨울을 나면서 은어는 치어(稚魚)로 자랍니다. 댐으로 봉쇄된 하천에서는 여기에 형성된 깊은 호수 밑바닥에서 겨울을 납니다. 이처럼 바다에 돌아가 크지 못하고 댐 호수에서 큰 놈들을 ‘육봉형(陸封型) 은어’라고 부르죠.

4월쯤 되어 바닷물과 강물의 온도가 비슷해지면 고향을 향해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세찬 물살에 매끈하게 씻긴 자갈에 붙은 물이끼를 먹으며 하루 1.5mm, 0.37g씩 자랍니다. 살이 오르고 단맛이 최고로 높아지는 이때가 은어 맛도 최고로 올라갑니다.

◇구이·솥밥·탕… 어떻게 요리해도 맛있다

은어는 여름을 맞은 섬진강과 경북 울진 왕피천, 강원 삼척 오십천, 양양 남대천 등 은어가 거슬러 올라오는 하천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소금 구이, 튀김, 회, 매운탕, 솥밥 등 다양한 은어 요리가 있습니다.

굵은 소금을 솔솔 뿌려 센 불에서 구운 은어 구이가 특유의 수박향과 담백한 살을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회로 먹으면 살이 단단하면서 가벼운 단맛과 수박향이 감도는데요, 워낙 깨끗한 생선이라 괜찮다고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민물 생선인지라 디스토마를 주의하셔야 합니다.

경남 하동 '혜성식당'의 은어밥./조선일보DB

저는 경남 하동에서 맛본 ‘은어밥’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쌀을 씻어서 밥을 짓다가 밥물이 줄어들면 은어 서너 마리를 머리부터 밥에 박아 넣은 뒤 뚜껑을 덮어 뜸을 들입니다. 밥이 다 되면 살만 발라 양념장과 함께 밥에 비벼 먹습니다. 상에 나올 때의 ‘비주얼’이 다소 혐오스러울 수 있습니다만, 은어의 수박향과 담백한 맛이 가장 살아있는 요리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은어는 대부분 양식산입니다. 양식산이나 자연산이나 쫄깃하고 담백한 살 맛은 비슷하지만, 양식산은 물이끼를 먹지 못하고 사료로 키우기 때문에 수박향이 거의 없습니다. 자연산이 양식산보다 주둥이가 뾰족하고 전체적으로 날렵하지만 웬만해선 구분이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