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전·현직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추천작 리스트 등을 소개해드립니다. 오늘은 김성현 기자가 디지털 음악 시장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 두 권을 비교해드립니다.

'롱테일 경제학'과 '로코노믹스'

디지털은 음악 시장의 약일까요, 독일까요. 최근 국내에 소개된 앨런 크루거(1960~2019) 전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의 ‘로코노믹스(Rockonomics)’를 읽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입니다. ‘로코노믹스’는 뜨거운 열정의 로큰롤(Rock)과 차가운 이성의 경제학(Economics)을 합쳐서 만든 신조어입니다. 이를테면 차가운 이성으로 뜨거운 열정의 록 음악을 살펴본다는 취지를 담고 있지요. 크루거는 최저 임금에 대한 찬반 논쟁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경제학자입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서 ‘오바마의 경제 교사’로 불리기도 했지요. 이 책이 출간되기 직전인 2019년 3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유족들은 그의 사인이 자살이라고 밝혔지요.

2016년 10월 6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위클리비즈 10주년 기념 경제·경영 글로벌 콘퍼런스’세션1 '새로운 생존전략과 리더십'에서 앨런 크루거가 발언하고 있다.

보통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타고난 감각이나 재능, 운 같은 요소가 흥행을 좌우한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흥망성쇠를 경제학적 법칙을 통해서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내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음악 소비자에게 음반이 일품요리라면 스트리밍은 뷔페”(232쪽) 같은 명쾌한 비유를 통해서 음악 산업의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지요. 한 장씩 돈을 내고 듣는 음반이 ‘일품요리’라면, 월정액을 내고 무제한으로 감상하는 온라인 음악 서비스는 ‘뷔페’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와이어드’ 편집장 출신인 크리스 앤더슨의 베스트셀러인 ‘롱테일 경제학’에 대해서 일종의 반론을 펴고 있다는 점도 흥미를 배가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실제로 크루거는 ‘로코노믹스’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롱테일 가정과는 배치되게) 인터넷으로 거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해서 음악에 대한 선호가 주로 사회적으로 결정되고, 결과적으로 소수의 뮤지션만이 인기를 얻는 경향이 바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으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곡의 수는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많아졌고, 이런 사실이 우리를 소셜 네트워크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로코노믹스’ 118쪽)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 3D로보틱스 CEO. 그는 2014년 3월 위클리비즈 인터뷰에서 "지식재산권을 강력히 통제하는 모델은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모두에게 공개하고 다 같이 혁신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 승리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롱테일 가정’은 앤더슨이 ‘롱테일 경제학’에서 제기한 가설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잘 팔리는 일부 상품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면, 반대로 온라인의 시대에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앤더슨은 20세기가 히트 상품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틈새 상품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요. 그래서 책의 제목도 ‘긴 꼬리(long tail)’지요. 실제로 앤더슨은 책의 첫 장부터 이렇게 단언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라디오와 TV가 중심이 된 브로드캐스트 시대와 함께 등장한 이런 구도가 가장자리부터 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히트 상품들이 지배력을 잃어가고 있다. 1등 상품의 위치는 변함이 없지만 판매량은 예전만 못하다.”(‘롱테일 경제학’ 31쪽)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요. 베스트셀러 작가와 경제학 석학의 주장을 감히 판단할 처지에 있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주장 모두 진실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황희 정승의 고사가 생각나네요~) 우선 소셜 미디어의 등장 이후,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이 줄어든 건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같은 온라인 영상 서비스의 등장으로 시청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고, 한 집 건너 한 집씩 같은 드라마를 보았던 예전 공중파 방송의 전성기가 돌아오기는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지요.

일견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 같지만, 여전히 우리는 넷플릭스 인기 시청 순위나 유튜브의 알고리즘 같은 추천에 의존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가요와 팝 같은 대중 음악에서도 ‘큐레이션(curation)’이라는 이름으로 추천의 역할은 오히려 커졌지요. 한편으로 우리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상황을 반가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귀찮고 번거롭게 여기는 ‘모순적 존재’인 것이지요.

저는 이 두 권의 책이 우리가 지닌 이중성 가운데 절반씩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의 등장으로 즐길 수 있는 음악은 무한으로 늘었지만(‘롱테일 경제학’), 그런 상황이 번거롭고 귀찮은데다 시간적 제약 때문에 여전히 추천에 의존(‘로코노믹스’)하고 있는 역설적 상황인 것이지요. 결국 황희 정승처럼 두 책 모두 옳다고 한다면, 과연 이 책들을 읽어야 할 필요는 무엇일까요. 저는 디지털의 등장으로 급변하는 대중 문화 시장을 이해하기 위한 사고력 훈련으로 최적의 교재이기 때문이라고 답변 드리고 싶네요. 만약 제가 시험 출제위원이라면 두 지문을 제시한 뒤 당신의 주장을 제기하라는 문제를 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