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까지 국가기록원(원장 이용철)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한 ‘광복80년 국가기록특별전: 빛으로 이어진 80년의 기록’ 야외 전시회에서 국가기록원이 역사 기록물을 조작한 사진을 전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1945년 8월 좌익의 소련군 환영 집회 사진과 9월 미군 환영 집회 사진을 합성해 마치 같은 날 촬영한 사진인 것처럼 전시했다. 별도로 열린 미소 두 연합군 환영 사진을 광복을 자축하는 군중사진으로 조작한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이 야외 전시회 첫 전시물로 ‘1945년 광복 이후 환호하는 사람들’ 제목으로 대형 사진 패널을 설치했다.<사진1> 태극기가 걸린 건물 아래 광장에 군중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런데 본지 취재 결과 이 사진은 아래쪽과 위쪽이 서로 다른 사진을 합성한 사진으로 밝혀졌다.<사진2>
아래쪽 부분은 1945년 9월 9일 미군 진주와 함께 용산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영국군 포로를 환영하는 사진이다. 위쪽 부분은 해방 다음날인 8월 16일 ‘소련군이 진주한다’는 소문에 좌익세력이 서울역 광장에 모여 집회를 갖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국가기록원은 이런 역사적 맥락을 은폐하고 한날한시에 촬영한 기록물인 것처럼 두 사진을 합성해 전시회 맨 앞에 걸었다.
위 <사진2> 오른쪽 아래 원본 사진을 보면 9월 9일 서울역에 도착한 영국군 포로들이 장갑차에서 내려서 군중 틈을 지나가는 장면이 촬영돼 있다. 그런데 전시된 사진에는 이들 군인들을 잘라내버리고 군중들만 나와 있다. 또 이 원본 사진 위쪽에는 군중 뒤로 건물 외벽이 찍혀 있는데, 기록원은 이 외벽도 잘라내고 군중들만 남기고 합성에 사용했다. 또 8월 16일 좌익 집회를 찍은 위쪽 원본 사진에서는 사람이 듬성듬성 서 있는 아래부분을 잘라내고 영국군과 건물 외벽을 없애버린 9월 9일 군중 사진을 이어붙였다. 자세히 보면 포토샵으로 이어붙인 흔적이 보이지만 전문적인 시각이나 지식이 없는 대중은 이 합성 사진을 객관적 역사로 믿을 수밖에 없도록 조작돼 있다. 미국과 소련 같은 연합국 승리와 해방 사이의 맥락이 사라지고, 주체적인 독립과 환호로 역사가 바뀐 것이다.
미군 사진은 미육군 통신부대가, 좌익 집회 사진은 시사잡지 ‘국제보도’ 기자들이 촬영했다. 미군 사진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검색할 수 있고, 좌익 집회 사진은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국가기록원에도 이 좌익 집회 사진이 소장돼 있다.
사진이 조작됐다는 사실은 국가기록원이 전시회와 함께 발간한 도록에서도 확인된다. 기록원은 이 9월 9일 사진을 ‘그날의 환희’ 장 10페이지 전면에 실으면서 뒷 배경을 흰구름이 있는 맑은 하늘로 바꿔놓았다.<사진3> 사진 제목은 ‘1945년 광복을 환호하는 사람들’이라고 붙여 놓았다. 촬영 날짜, 장소, 맥락에 대한 설명은 없다.
또 도록 12페이지에는 8월 16일 서울역 좌익 집회 사진 2점도 게재돼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점이 이 합성사진 재료로 사용된 서울역 좌익 집회 사진 원본이다.<사진4>
이 페이지에는 ‘축 해방(解 혹은 조선의 鮮인지는 불분명하다)’ ‘WEL COME’이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든 사람들 사진도 함께 게재돼 있다. 그런데 이 사진 또한 원본을 임의로 조작한 사진이다. 당시 ‘국제보도’가 촬영한 원본사진에는 ‘축 해방’이라는 플래카드에 러시아어로 적은 ‘붉은 군대 만세’ ‘C.C.C.P’(소련) 문구가 촬영돼 있다.<사진5> 그런데 국가기록원은 이 문구가 삭제된 사진을 그대로 도록에 실었다. 국가기록원은 “광복의 환희라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군중이 나와 있는 사진들을 골랐을 뿐, 역사를 왜곡할 의도는 없었다”며 “두 사진이 각각 다른 장면임을 설명하지 못한 점은 앞으로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