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자발적 실업은 자기가 좋아서 그만둔 거라 실업수당을 안 준다는 생각은 매우 전근대적이지 않나”라며 실업급여 제도 변화를 시사했다. 현재는 권고 사직 등 비자발적으로 퇴사한 근로자에게만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실업수당 받으려고 실업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실업급여는 매달 근로자 월급의 1.8%(2026년 기준)를 근로자와 사업주가 절반씩 부담해 조성한 고용보험 기금에서 나간다. 정부는 현재 생애 1회에 한해 자발적 퇴사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급 범위가 확대될 경우 기금 고갈과 도덕적 해이 우려가 나올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비정규직 임금과 관련해 “(고용) 불안정성에 대한 보상이 정상적으로 주어진다면 똑같은 조건일 때 비정규직의 보수가 더 많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무기(無期) 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현행 비정규직 보호 제도에 대해선 “정규직화를 강제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2년 미만 고용’을 강제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이 제도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비정규직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직접 고용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은 비정규직 채용 때 2년 미만으로만 계약하거나, 업무를 외주화했다.

이명박 정부가 고용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려 했지만 민주당은 “비정규직 영구화”라며 반대했고, 이후 현 여권이나 대형 노조가 금기시해 온 주제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날 “노동 문제는 매우 예민하지만 이념이나 가치에 매여선 안 된다”며 “실용적으로 접근해 필요하면 제도를 과감히 손질해야 한다”고 했다.

◇‘비정규직 2년 제한’ 지적한 李 “이념 매달리지 말고 실용적 접근을”

이날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전체 회의는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 개최됐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헌법 기관으로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있다. 중동 사태 장기화 가능성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가운데, 이 대통령은 다양한 노동 문제에 대해 본인 생각을 밝혔다.

李 국민경제자문회의 주재… “저요!” 발언권 경쟁 9일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한 이재명 대통령이 발언권을 얻기 위해 손을 든 참석자들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자발적 실업은 자기가 좋아서 그만둔 거라 실업수당을 안 준다는 생각은 매우 전근대적이지 않나”라며 “수정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노동 관련 제도에 ‘실용적 접근’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반노동적이라는 평가는 받지 않을 것 같아 이런 이야기를 용감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과 노동계가 예민하게 본다는 점을 본인도 알지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 대통령은 이날 실업급여 개편, 비정규직 임금과 고용 제도 등을 언급했다. 특히 비정규직 계약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현행 비정규직 제도 문제 개선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비정규직 보호 제도 도입 후)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봤더니 절대 비정규직을 2년 이상 고용하지 않고 1년 11개월 만에 계약을 끝내 버린다”면서 “정규직화를 강제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2년 미만 고용’을 강제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했다.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5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기간제 근로자가 만 2년 근무하면 반드시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규직 고용이 부담스러운 기업들은 2년마다 사람을 바꾸고, 기간제 업무는 그에 따라 임금 수준이 개선되지 못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2년 기한을 연장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현 여권과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됐다. 2009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기한을 4년으로 연장하려고 하자 당시 민주당은 “노동자 인권”을 강조하며 저지했다. 당시 민주당은 정부가 각종 사회보험 등으로 정규직 고용 기업을 지원하라고 했다. 산업계의 제도 개선 요구 역시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대형 노조의 반대에 부딪쳤다.

이 대통령은 구체적인 방안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비정규직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진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산업계 일각에선 최근 기업 사내 비정규직 직고용과 맞물려 정규직화를 강조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 대통령 발언에 대해 이날 민주당이나 대형 노조는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민주노총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비정규직 임금과 관련해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고용이 안정된 사람은 더 많이 받고, 똑같은 일을 하는데 고용이 불안한 사람일수록 덜 받는다”며 “불안정성에 대한 보상이 정상적으로 주어진다면 똑같은 조건일 때 비정규직의 보수가 더 많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했다. 지난해 정부 통계에 따르면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65% 수준이다.

이런 발언은 정부가 추진하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정책과 어긋난다는 시각도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현재는 정규직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해 기업들이 고용 유연성 확보 차원에서 대체·축소가 가능한 업무 영역에서 비정규직을 쓰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며 “고용 유연성은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 임금만 높인다면 기업이 채용 자체를 줄일 것”이라고 했다. 강성 노조가 있는 대기업의 경우,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오히려 정규직 노조의 연쇄적인 임금 인상 투쟁이나 파업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는 정규직의 양보가 전제돼야 하는 문제”라며 “사회적으로 노동 유연성에 대한 대화와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토론회에서 “노동자는 ‘해고는 죽음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기업은 정규직을 뽑아 놓으면 꼼짝을 못 하니까 아예 정규직을 안 뽑고 비정규직을 고용하거나 하청을 준다”며 “극단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해결 방안과 관련, “이상적으로는 고용 유연성 확장”이라면서 동시에 “기업 입장에서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대신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