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입법부가 무역 합의를 승인하지 않았다”며 관세 복원을 예고하자, 여야의 ‘늑장 입법’이 빌미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 관세 합의를 뒷받침하기 위한 특별법은 지난해 11월 발의됐지만, 이후 2개월여간 국회 상임위 심의도 한 번 이뤄지지 않았다.
작년 11월 26일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한미 전략적 투자관리를 위한 특별법’(대미 투자 특별법)을 발의했다. 지난해 10월 29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의 후속 법안 성격으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위한 한미전략투자기금 설치 등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같은 당 안도걸·진성준·홍기원 의원과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도 같은 이름의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재경위는 법안 발의 후 전체회의를 6차례 열었으나, 특별법은 한 번도 심의되지 않았다. 현재 재경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속 임이자 의원이지만, 민주당이 재경위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다. 임 위원장은 27일 “(특별법을) 12월 중순경 논의했어야 하는데, 당시 한창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하는 기간이었다”며 “올 1월 와서는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있었다”고 했다.
한·미 관세 협상 결과를 담은 양해각서(MOU)는 특별법안이 한국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1일 자로 소급해 미국이 관세를 인하해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는 작년 11월 1일 기준으로 인하됐다. 법안을 ‘발의’만 하면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국회 절차를 서두르지 않은 측면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왜 발의만 하고 통과를 안 시키냐’는 취지의 압박을 한 것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정부가 그토록 성공이라고 자화자찬하던 한·미 관세 합의가 얼마나 불안정한 구조 위에 놓여 있었는지 보여준다”며 “(정부·여당이) 손 놓고 있었다”고 했다. 반면 재경위 소속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관세 협상은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비준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이) 비준 대상이라고 우기며 특별법 통과를 지연시켜 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에 야당이 빌미를 줬다”고 했다.
관세 협상 결과를 담은 MOU는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 비준이 필요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국회 비준은 세부 사항까지 국회에 보고해야 하고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리는 데다, 추후 합의 내용을 변경해야 할 상황이 왔을 때 유연한 대처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
다만 국회에서 심의조차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은 여야에 모두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결국 여야 모두 ‘신속 통과’ 의지가 없었던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을 받고 부랴부랴 논의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