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13일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일본 나라(奈良)시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정상회담과 만찬 등을 진행한다고 9일 밝혔다. 나라시는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이자 지역구다. 이 대통령은 작년 10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다카이치 총리와 만나 ‘다음번엔 나라에서 만나자’고 제안했었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춘추관에서 가진 방일 브리핑에서 “나라시는 약 1500년 전 고대 한반도와 일본의 인연이 이어져 내려온 한일 교류·협력의 상징적 장소”라며 “정상 간 개인적 유대가 더욱 깊어지고,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발전 방안에 대한 공감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오는 13일 나라시에 도착해 다카이치 총리와 단독 회담, 확대 회담을 갖는다. 회담 뒤엔 공동 언론 발표를 통해 양국 간 협의 사항을 밝힐 예정이다. 이후에도 일대일 환담과 만찬이 예정돼 있다.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14일엔 나라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호류지(法隆寺·법륭사)를 함께 방문하는 친교 일정을 갖는다. 이후 오사카 등 일본 간사이 지역 소재 동포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귀국하는 일정이다.
위 실장은 “1박 2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양 정상이 총 다섯 차례에 걸쳐 대화를 나누게 되며 현안들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지역 및 글로벌 현안, 경제·사회·문화 등 민생에 직결된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양 정상은 지난 두 번의 만남에서 다루지 않았던 과거사 문제도 논의한다. 위 실장은 “조세이(長生) 탄광 등 과거사 문제에서 한일 양국이 인도적 측면의 협력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면서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 등도 함께 다뤄질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야마구치현에 있는 조세이 탄광은 1942년 붕괴된 해저 탄광이다. 조선인 징용자 136명이 수몰돼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6명은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희생자 이름을 찾아내면서 알려진 숫자로, 실제 희생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 실장은 조세이 탄광 희생자에 대한 ‘한일 공동 조사’ 등 가능성에 대해 “서로 협의를 하고 있고, 유해에 대한 DNA 수사라든지 그런 면에서 지금 새로운 진전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작년 6월 취임 뒤 대일 외교와 관련해 “한일 관계에는 실용적 관점이 필요하다”며 과거사 문제와 한일 간 경제 협력 등을 분리 대응하는 ‘투 트랙 외교’ 기조를 이어왔다. 그러면서 정상 간 대화에서 과거사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한일 간 신뢰가 쌓이면 과거사 문제에서도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다”며 “전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부터 다카이치 총리까지 여러 차례 만나며 신뢰 관계를 구축한 만큼 과거사 문제도 이제 조금씩 얘기해도 될 시기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위 실장도 “과거사 문제는 한일 간의 현존하는 이슈이고, 과거의 문제이지만 잘 다뤄서 미래 협력에 지장이 안 되게 해 나가야 한다”며 “그동안 축적해온 (양국 간) 좋은 에너지를 갖고 어려운 이슈를 풀어보는,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선순환 사이클 메커니즘”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방일은 중국의 일본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로 중일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뤄진다. 이 대통령은 지난 4~7일 중국을 국빈 방문한 데 이어, 약 일주일 만에 일본을 찾게 됐다. 위 실장은 “일정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이어지게 됐지만 두 방문은 연계해서 추진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에 대한 대응으로, 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기간에 희토류를 포함한 이중 용도 물자의 일본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중국이 수출 통제 물자가 제3국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는 것도 제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당장 한국 수출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위 실장도 “수출 통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고, 우리에게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중일 갈등에 따른 역내 안보 현안에 대한 논의도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위 실장은 “한일이나 한중 간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지역이나 주변 정세에 대해 얘기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며 “한일 간에도 그럴 개연성은 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한일 정상 간 대화를 중국도 주시할 수밖에 없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