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작년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20국(G20)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만나 손뼉을 마주치며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13일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일본 나라(奈良)시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정상회담과 만찬 등을 진행한다고 9일 밝혔다. 나라시는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이자 지역구다. 이 대통령은 작년 10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다카이치 총리와 만나 ‘다음번엔 나라에서 만나자’고 제안했었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춘추관에서 가진 방일 브리핑에서 “나라시는 약 1500년 전 고대 한반도와 일본의 인연이 이어져 내려온 한일 교류·협력의 상징적 장소”라며 “정상 간 개인적 유대가 더욱 깊어지고,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발전 방안에 대한 공감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오는 13일 나라시에 도착해 다카이치 총리와 단독 회담, 확대 회담을 갖는다. 회담 뒤엔 공동 언론 발표를 통해 양국 간 협의 사항을 밝힐 예정이다. 이후에도 일대일 환담과 만찬이 예정돼 있다.

일본 나라시에 있는 호류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5층 목탑이 있다. 오는 13일 일본 나라시에 방문하는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함께 호류지를 방문한다.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14일엔 나라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호류지(法隆寺·법륭사)를 함께 방문하는 친교 일정을 갖는다. 이후 오사카 등 일본 간사이 지역 소재 동포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귀국하는 일정이다.

위 실장은 “1박 2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양 정상이 총 다섯 차례에 걸쳐 대화를 나누게 되며 현안들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지역 및 글로벌 현안, 경제·사회·문화 등 민생에 직결된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양 정상은 지난 두 번의 만남에서 다루지 않았던 과거사 문제도 논의한다. 위 실장은 “조세이(長生) 탄광 등 과거사 문제에서 한일 양국이 인도적 측면의 협력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면서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 등도 함께 다뤄질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야마구치현에 있는 조세이 탄광은 1942년 붕괴된 해저 탄광이다. 조선인 징용자 136명이 수몰돼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6명은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희생자 이름을 찾아내면서 알려진 숫자로, 실제 희생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 실장은 조세이 탄광 희생자에 대한 ‘한일 공동 조사’ 등 가능성에 대해 “서로 협의를 하고 있고, 유해에 대한 DNA 수사라든지 그런 면에서 지금 새로운 진전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작년 6월 취임 뒤 대일 외교와 관련해 “한일 관계에는 실용적 관점이 필요하다”며 과거사 문제와 한일 간 경제 협력 등을 분리 대응하는 ‘투 트랙 외교’ 기조를 이어왔다. 그러면서 정상 간 대화에서 과거사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작년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뉴시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한일 간 신뢰가 쌓이면 과거사 문제에서도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다”며 “전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부터 다카이치 총리까지 여러 차례 만나며 신뢰 관계를 구축한 만큼 과거사 문제도 이제 조금씩 얘기해도 될 시기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위 실장도 “과거사 문제는 한일 간의 현존하는 이슈이고, 과거의 문제이지만 잘 다뤄서 미래 협력에 지장이 안 되게 해 나가야 한다”며 “그동안 축적해온 (양국 간) 좋은 에너지를 갖고 어려운 이슈를 풀어보는,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선순환 사이클 메커니즘”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방일은 중국의 일본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로 중일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뤄진다. 이 대통령은 지난 4~7일 중국을 국빈 방문한 데 이어, 약 일주일 만에 일본을 찾게 됐다. 위 실장은 “일정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이어지게 됐지만 두 방문은 연계해서 추진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에 대한 대응으로, 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기간에 희토류를 포함한 이중 용도 물자의 일본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중국이 수출 통제 물자가 제3국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는 것도 제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당장 한국 수출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위 실장도 “수출 통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고, 우리에게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중일 갈등에 따른 역내 안보 현안에 대한 논의도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위 실장은 “한일이나 한중 간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지역이나 주변 정세에 대해 얘기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며 “한일 간에도 그럴 개연성은 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한일 정상 간 대화를 중국도 주시할 수밖에 없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