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8일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또 영원한 규칙도 없는 냉혹한 국제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개척하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유연하고 치밀한 실용외교를 통해 주변과의 협력 기반을 넓히면서 국익을 지키고 국력을 키워서 국민 삶을 더 적극적으로 개선해 가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4~7일 국빈 방중 직후 나온 이 대통령의 언급은 미·중 경쟁과 격화되는 중·일 갈등에 휘말리지 않고 실리를 챙기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도 “국제 질서의 격변 앞에 갈등의 불씨도 곳곳에 상존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힘의 논리가 아닌 존중의 정치, 대결이 아닌 협력의 외교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조만간 이뤄질 일본 방문이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에 진짜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본 언론은 이 대통령이 13~14일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고향이자 지역구인 나라(奈良)시를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이날 방한한 일본 자민당의 정책통 고바야시 다카유키 정무조사회장 등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이번 달 우리 대통령의 방일이 예정된 상황”이라며 “경제협력에 있어 한일 양국은 최적의 파트너”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도쿄에서 이시바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와 회담하고, 지방활성화·저출산·고령화 등 공통 과제 해결을 위한 ‘당국 간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다. 그 후 이시바 총리가 9월 말 부산, 그 뒤를 이은 다카이치 총리가 10월 말 경주를 방문했다. 이런 흐름 속의 셔틀 외교인 만큼, 청와대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지방 간 협력 등 민생 문제가 이번 방일의 주요 의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이 희토류를 포함한 이중용도 물자의 수출통제를 발표한 상황에서 관련 논의를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정상회담에서는 통상 세계·역내 정세를 논의한다. 그러다 보면 중국과 대만 문제도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은 수출통제 물자를 일본에 이전하는 제3자에도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를 했다. 이 대통령도 7일 이에 대해 “단기적으로 우리의 가공 수출에 연관될 수 있고 장기적인 영향도 속단할 수 없다”고 했다. 한일 간에 중국의 조치와 그 영향을 평가하는 협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 측이 사드(THAAD) 배치 후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을 거론하며,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공동 대응하자는 메시지를 내려 할 수도 있다. 강창일 전 주일 대사는 “일본은 한국을 자기네 편으로 당기고 싶지 않겠나”라며 “(중·일) 양쪽에서 당기는 상황에서 우리의 외교력, 정치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했다.
민감한 시기의 방일을 미국 역시 주시할 것이란 점도 의식해야 한다. 중국에 비해 일본을 경시한다는 인상을 주면, 이 대통령은 ‘친중(親中)’이란 미국 내 일각의 의구심이 커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일본에 치우치면 중국과의 관계에 영향이 오게 된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일 갈등이 표면화된 상황에서 우리가 완전히 물러나 있기도 쉽지 않다”며 “이 대통령의 언급이나 행동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고 했다.
시 주석은 지난 5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80여 년 전 한중 양국은 막대한 민족적 희생을 치르며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 승리를 거뒀다”며 “오늘날 (한중이) 더욱 손잡아야 한다”고 했다. 손열 연세대 교수는 “시 주석이 이런 발언을 하며 국빈 방중 기간에 대일본 제재를 발표한 것은 결국 ‘한·중은 한 배를 타야 한다’는 뜻”이라며 “중국이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떼어내려고 시도하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대화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중국과의 ‘역사적 연대’를 상기시킨 만큼, 일본과도 균형을 맞추는 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회담 장소로 거론되는 나라의 경우, 지역 대표 사찰인 도다이지(東大寺)의 금동대불 조성에 백제에서 건너간 도래인의 후손이 관여하는 등 백제 관련 유적·유물이 특히 많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