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가 17일 국회 청문회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 “현재 유출된 데이터의 유형을 봤을 때 미국의 개인정보 보호법하에서는 신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해 여야의 질타를 받았다.
로저스 대표는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이번 사건을 보고한 시점을 묻는 의원 질의에 “SEC 규정에 따르면 이번 사고 같은 경우는 중대 사고가 아니어서 공시할 의무는 없었다”면서 “다만, 이번 이슈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오늘 공시를 진행했다”고 했다.
이 같은 답변을 들은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로저스 대표에게 “휴대전화 번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로저스 대표는 당황한 듯 몇 초간 답변을 하지 못하다가 “그것은 개인정보라 공유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의원은 이어 ‘배송지 주소’ ‘이메일 주소’ 등을 물었지만 역시 로저스 대표는 개인정보라 밝힐 수 없다는 답을 내놨다.
김 의원은 “개인정보라서 밝힐 수 없다는 쿠팡 로저스 대표는 앞서 ‘이런 유형의 정보는 미국 개인정보법상 신고 의무가 있는 사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며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 소비자 프라이버시 보호법(CCPA) 등 미국 법규도 이름과 주소 등 각종 개인 식별 정보는 매우 심각한 정보로 분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 규제 당국이 조사를 개시했고, 쿠팡은 전면 협조하고 있다’고 제출했다”며 “하지만 오늘 로저스 대표가 국회에 와서 발언하는 것을 보면 전면 협조할 의향이 없다. 의도적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쿠팡 실소유주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과 박대준 전 대표 등은 불출석하고, 로저스 대표를 포함해 외국인 임원 2명만 출석해 여야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이들은 청문회 내내 “Happy to be here(이 자리에 오게 돼 기쁘다)” 등의 질문과 상관없는 의례적인 발언을 하며 시간을 끌고 동문서답 답변을 내놨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통역을 거쳐 답변을 듣느라 시간이 지체되자 “제가 번역해 드릴게요”라며 답변을 스스로 번역하고 질의응답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 대표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어제 열린 쿠팡 개인정보 유출 청문회는 대한민국 국회 역사에 깊은 수치로 남을 장면이었다”며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나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가 문제 발생 시 미국 의회에 직접 출석한 것과 비교하면, 김범석 의장의 태도는 한국 국회를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쿠팡은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외국인 신임 대표와 CISO를 증인으로 내세워 청문회를 사실상 ‘영어 듣기 평가’로 만들었다”며 “모든 질의응답이 교차 통역으로 진행되며 청문회 흐름은 반복적으로 끊겼고, 핵심 질문에는 동문서답만 이어졌다. 책임 있는 해명을 하겠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청문회 과정에서 한 의원이 증인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요청하자 개인정보라며 거부한 장면은 상징적이었다”며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기업의 대표가 자신의 전화번호는 보호받아야 할 개인정보라고 말하는 모습은 쿠팡의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중대한 법 위반이자 국민 신뢰에 대한 침해로 규정하고 쿠팡에 대해 최고 수준의 규제와 제재를 적용하겠다는 분명한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며 “한국에서 영업하며 막대한 이익을 얻는 기업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반드시 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