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미 CNN과 인터뷰에서 대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며 한미 간에 “이견”이 있다고 인정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에 대한 한미 간 의견 차이가 아직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양국이 29일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계기에 큰 틀에서 관세 협상을 마무리짓고 합의 사항을 ‘문서화’하려 했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실현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분할 투자 기간·액수에 이견
대미 협상을 총괄하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함께 22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 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2시간 동안 만났다. 지난 16일에 이어 엿새 만에 다시 만난 것이지만,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김 실장은 “일부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논의를 더 해야 한다”고 했다.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해 “막바지 단계는 아니고 협상이라는 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앞서 김 실장은 같은 날 오전 미국에 입국하면서 “많은 주제는 의견이 많이 접근해 있고, 한두 가지 주제에서 양국 입장 차이가 크다”며 “우리 입장을 미국이 조금 더 진지하게 이해해준다고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양국 간 이견이 큰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펀드의 투자 기간과 방식, 수익 배분 등에 대해 우리 측 입장을 개진했지만, 러트닉 장관의 동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은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펀드에서 한국의 현금 투자 비율을 2000억달러 수준으로 낮추고, 여러 해에 걸쳐 분할 투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미국이 그동안 ‘전액 현금 투자’와 선불(upfront)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상당 부분 물러선 것이긴 하다. 하지만 미국은 투자 금액을 8년간 연평균 250억달러 정도로 요구하는 데 반해, 한국은 한 해 150억달러 이상은 어렵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애초 3500억달러의 5%(175억달러) 내에서만 현금 투자하고 나머지는 대출과 보증 등으로 채우겠다는 구상이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외환시장 충격을 주지 않고 조달할 수 있는 외화 규모는 연간 150억~200억달러라고 밝혔다. 여권 관계자는 “이 수치도 다른 데 필요한 건 꾹꾹 누른 정도인데 그 이상을 투자하라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라며 “한미 간 얘기가 나왔던 ‘통화 스와프’ 문제도 연평균 투자 금액이 구체적으로 결정돼야 논의에 진전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수익 배분 비율과도 연동
조현 외교부 장관은 23일 라디오 방송에서 분할 투자 금액과 기간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말하기 곤란하다”며 “지금 투자 구조, 투자 방식, 수익 배분 등에 관해서 하나를 조금 줄이면 다른 것이 늘어나고 이런 복잡한 구조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은 우리 측이 출자를 하는 만큼 투자금 회수 때까지는 수익의 90%를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일본과 투자금 회수 때까지는 50%씩 수익을 배분하기로 합의한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보다 더 유리한 조건을 한국에 허용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실장은 22일(현지 시각) 협상 뒤 러트닉 장관과 곧 다시 만날 것이냐는 물음에 “만나기는 어렵다. (얘기할 일이 생기면) 화상으로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음 주 한미 정상회담 전에 관세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보는지 묻는 질문에 “(정상회담이) 우리에겐 중요한 계기”라고 말했다. 조 장관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통상 합의문이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며 ‘팩트 시트(Fact Sheet)’ 형식을 포함해 “여러 가지 방안이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대면하기 전까지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6~27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일본을 거쳐 한국에 올 예정이다. 이런 아시아 순방 일정 대부분에 러트닉 장관도 동행하는 만큼, 한미 정상회담 직전까지 양국 정상의 의중을 반영한 긴밀한 협상이 계속되고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