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건 관련자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1979년 12월 20일 육군본부 계엄 보통군법회의(재판장 김영선 중장)에서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포승에 묶여 걸어오며 웃고 있다. photo 뉴시스

“심판장님, 오늘 현재 지금 재판을 받는 이 결과는 4~5개월 후에는 다시 제가 심판을 받으리라, 그것은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장이 ‘10·26 사건’ 재판 과정에서 내뱉은 이 말은 실현될 수 있을까. 비록 그의 말처럼 사건 이후 수개월 후는 아니지만, 김 전 부장에 대한 재심이 오는 7월 16일 첫 공판기일을 시작으로 진행된다. 1980년 5월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김 전 부장에게 사형을 선고한 지 45년 만이다. 당시 김 전 부장은 사형 선고 나흘 뒤인 5월 24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저는 대통령이 되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 제 목적입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줄곧 내란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그가 현직 대통령을 살해한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이런 그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소위 보수 진영에서는 반역자이자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로 평가한다. 반면 소위 진보 진영은 그를 유신 체제를 무너뜨려 더 큰 희생을 막은 인물로 여긴다. 여기까지는 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있다. 유족 대표 격으로 활동 중인 김성신(김 전 부장의 조카) 한양대 겸임교수는 주간조선과 만나 “45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 그 상태에서 별로 역사적 논의가 진척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마치 박제된 것처럼 사건이 고정된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재심은 김 전 부장의 암살 목적에 대한 내란 여부와 재판 과정이 정당했는지에 대해 법적 판단을 다시 내리는 절차다. 재심 과정과 그 결과는 그에 대한 평가와 후대의 인식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직 대통령 살해 사건 당사자에 대한 역사적 재심이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7월 첫 공판 시작

이번 재심은 김 전 부장의 셋째 여동생이 지난 2020년 신청하며 시작됐다. 신청인인 셋째 여동생은 앞서 김 교수의 모친이기도 하다. 사실 김 전 부장의 유족들은 그간 재심은커녕 그의 ‘명예회복’에 대해서도 적극적일 수 없었다. 이미 신군부에 의한 전두환 정권은 1987년 막을 내렸고 민주화에 성공한 한국 사회였음에도 말이다. 김 교수는 “워낙 큰 사건이었다 보니, 사실 (증거를 포함해) 나올 것들은 나온 상황이었다”며 “외숙모(김 전 부장의 배우자)나 외삼촌의 자제분들은 아직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크다”고 표현했다.

흥미로운 점은 민주당 계열의 정부가 들어섰을 때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지난 문재인 정부까지 세 차례 집권 여당이 된 민주당은 1979년 부마항쟁이나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해서는 꾸준히 재평가와 진실 규명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 속에서도 유독 10·26사건과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흥미로운 일화를 전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참여정부 당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가 노무현 대통령과 독대하는 자리가 있었다. 함 신부는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에게 김 전 부장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명예회복 및 재평가를 권유했으며, 노 대통령 역시 중요성에 공감하며 긍정적인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내부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정치적으로 도움될 게 없다’는 취지였다. 결국 정부 차원에서의 명예회복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세간에서는 ‘10·26에 대한 논의가 좀 더 진척되지 않겠는가’라는 기대가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도 그랬다”면서 “하지만 민주당 입장에서는 10·26을 건드려서 얻을 정치적 이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함 신부를 포함해 송죽회 구성원들이 매해 5월 24일 김 전 부장의 추도식을 진행하는 등 그의 명예회복과 재평가를 위해 목소리를 내왔다. 특히 이들은 10·26 인물들의 ‘명예회복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어떤 정부에서도 유족들은 김 전 부장의 재심은 물론 명예회복을 꿈꿀 수 없었다. 그러나 2020년경 공개된 재판 당시의 녹취록은 새로운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김 교수는 “녹취록을 통해 재심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며 “원래의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는 의미로 느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물론 가족들 간의 이견도 컸다. 김 전 부장의 배우자와 자녀는 여전히 재심 신청에 긍정적이지 않았으며, 재심 신청이 가능한 남아있는 형제들 역시 쉽사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김 교수가 자신의 어머니인 김 전 부장의 셋째 여동생을 설득했고, 결국 재심 신청에 나선 것이다. “오빠를 위해서 뭔가 ‘내가 좋은 역할을 했다’는 어떤 자부심 같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에 하셨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재심 신청이 인용될 확률도 매우 낮았다는 것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재심 개시 결정을 받는 비율은 10~20%대로 나타나고 있으며, 동일한 사건으로 재심을 청구했다가 기각될 시 재신청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 재심을 신청하고서 5년여 만인 지난 2월 19일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 이와 관련해 판사 출신 정재민 변호사는 “재심 개시 사유 중 가장 주요한 것은 ‘수사관들이 폭행하고 전기 고문했다’는 내용”이라며 “재심 개시 가능성도 사실 명목상 20%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2~3%도 안 나올 것이다. 새롭고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왼쪽)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photo 김재규 유족 제공

‘내란 목적 여부’ 쟁점… ‘수사 과정’도 주목

지난 3월 재심 결정 이후에도 고비가 생겼다. 검찰이 즉시 재항고를 제기했던 것이다. 검찰은 “재심사유의 존재가 확정판결에 준하는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대법원이 지난 5월 13일 이를 기각하면서 재심은 진행될 수 있게 됐다. 이번 재심의 경우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이재권·송미경·김슬기)가 담당하게 되면서 최대 2심으로 치러지게 됐다. 재심은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법원에서 진행되는데, 김 전 부장의 경우 1·2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 법원이 법리적 이유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새로 유죄 판결을 내렸기에 재심도 관할하게 됐다.

이번 재심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살해 동기가 대통령이 되기 위한 ‘내란 목적’이었는지를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부장의 혐의는 정확히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수괴미수’였다.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역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자신(김재규)의 모든 보고나 건의가 차지철 경호실장에 의하여 제동을 당하였을 뿐 아니라,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대통령이 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허욕이 빚은 내란 목적의 살인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재심 과정에서 김 전 부장은 대통령이 될 목적을 적극 부인했다. 그는 최후진술에서도 “한마디 확실히 말할 것은, 나는 결코 대통령이 되려는 생각이 없었다”라면서 “나는 군인이요 혁명가이고, 군인이 정권을 잡으면 독재자가 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또 다른 정황은 그가 이전부터 세 차례나 박 전 대통령 암살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당시 변호인단은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부득이한 살인이었다”며 내란죄 구성 요건인 ‘국헌 문란의 목적’과 ‘폭동’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재심을 청구한 유족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정권 찬탈을 위해’ 대통령을 쏜 내란범이라는 꼬리표를 바꾸겠다는 목적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대통령으로 취임한 인물은 그를 수사한 전두환이었다.

또 다른 쟁점은 사건 이후 그를 조사하는 과정이 적법하고 정당했는지 여부다. 여기에는 김 전 부장에 대해 고문을 포함한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여부도 포함된다. 이 사건 재판은 1심의 경우 16일, 항소심은 단 6일 만에 종결됐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최소한의 변론 등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김 전 부장의 남동생인 김한규 씨에게 협박도 들어왔다고 한다. “변호인단들이 계속 모이기 시작하니까, ‘이들을 해촉하지 않으면 가족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 이런 식으로 협박했다고 한다. 이를 형(김재규)에게 전달했더니, ‘나 때문에 일가족들이 다 위험하면 안 되지’ 이러시면서 해촉했었다고 한다.”

고문 등 가혹 행위 여부도 주목된다. 이번 재심을 결정한 재판부는 “당시 기록에 의하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이 피고인을 재심 대상 사건으로 수사하면서 수일간 구타와 전기 고문 등 폭행과 가혹행위를 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이는 인신 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직무를 수행하면서 피고인에 대해 폭행, 가혹 행위를 한 것으로 형법 제125조의 폭행, 가혹 행위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판단은 후대가…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를”

재심 결과에 따라 김 전 부장에 대한 법적 판단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그가 내란의 목적을 가지지 않았다는 결론이 난다든가, 고문을 포함한 가혹 행위 등 수사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및 적법성 위반도 드러날 수 있다. 이럴 경우 판결을 토대로 김 전 부장이 유신독재를 끝내기 위해 항거했다는 점 등에 대한 재평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진정한 재심 취지는 따로 있다고 말한다. 바로 ‘역사적 자료’다. 그는 “100년쯤 후에 후손들이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재심을 통해 역사적 자료들이 쌓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어떤 결과든 재심 과정에서 변호인단과 검사 측에서 각각 제시하는 증거들이 쌓이면서, 일종의 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김 교수는 “훗날 정치적 입장 등을 떠나, 이 사건을 정말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며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판결보다 더 의미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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