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악(次惡)도 없는 것 같아요.”
직장인 이준원(26)씨는 이제 정말 고를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는 “친구들하고 얘기하다 보면, 원래 정치 성향이 뚜렷했던 이들도 ‘이젠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얘기한다”고 토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고등학생 또는 대학생이었던 현재의 2030세대는 당시 어른들과 함께 국가 최고 권력을 끌어내렸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속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30세대들은 응원봉을 들고 거리에 나가거나 도로에 돗자리를 깔고 밤샘 집회에 참여했다. 일부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탄핵 반대 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이제 윤 대통령의 체포로 인해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시점에서 이미 정치권과 민심은 예정보다 빨라진 조기 대선으로 향하고 있다. 선배 세대들의 뚜렷한 정치 지형에 비해 이념적 색채가 비교적 선명하지 않은 20·30대가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다시 ‘캐스팅보트’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이들의 민심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정치가 중요한 걸 느꼈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는 직장인 심모(27)씨는 부쩍 정치 뉴스를 찾아보는 경우가 늘었다. 심씨는 “계엄령이 선포된 날 비트코인이 폭락하는 것을 보면서, 정치와 경제가 깊게 연관된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했다”며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비트코인을 시작했다는 심씨는 이번에 ‘정치가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내가 투자하는 작은 것들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기 마련”이라며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심씨의 말처럼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은 이전까지 정치를 쳐다보지 않았던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는 조모(30)씨는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환율이 굉장히 요동쳤다”면서 “(이번 정국으로 인해) 타격을 엄청 받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정치가 자신의 개인적인 고민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올해 이직이 목표”라는 그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 악화가 이어지다 보니, 지금은 미래를 꿈꿀 수 없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2030세대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평가는 매번 달라진다. 이들은 앞서 윤석열 정부 출범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2022년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은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이하 남성에서 58.7%, 30대 남성에서 52.8%를 각각 득표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크게 앞섰다. 윤 대통령은 20·30대 여성으로부터도 선전했다. 당시 윤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은 20대 여성(33.8%)과 30대 여성(43.8%)에서 모두 30% 이상을 기록하며 2020년 총선보다 호성적을 거뒀다. 당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젊은 여성 세대에게 받은 득표도 역대 최다”라고 강조할 정도였다.
진보·보수 정부 모두 경험… “둘 다 싫어”
다만 시간을 더 앞으로 돌려보면 얘기가 다르다. 현재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은 대부분 고등학교와 대학생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을 거쳤다. 이에 2017년 조기 대선 당시에도 문재인 전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 출구조사에서 문 전 대통령의 20대 득표율은 47.6%로 다자구도에서도 50%에 육박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은 보수 진영에 대한 기대감으로 돌아섰다. 결국 2030세대는 윤석열 정부 탄생에 공을 세웠다.
거대 양당의 정부를 최소 한 번씩 경험한 2030세대의 마음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 대학생 류효림(25)씨는 “정치 환멸이자 참담함을 느낀다”고 말하며 “이 어른들이 이것밖에 못 하는 사람들이 아닐 텐데, 권력욕에 너무 심취해 이렇게 흘러가는 정치가 짜증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똑같은 거 (뉴스를) 보기가 싫을 정도”라며 “이젠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개인사업을 하는 박모(33)씨 역시 “정당이 유능한 후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느낀다”면서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적 무관심 더 커질 수도 있어”
이러한 실망감은 20·30대로 하여금 거대 양당 구도를 벗어나 대안적인 ‘제3세력’에 대한 요구가 유독 강하게 나오는 이유로도 이어진다. 앞서 이씨는 “여태껏 거대 양당에만 표를 던졌지만, 다른 대안 세력에 표를 주고 싶다”면서 “이젠 ‘나 하나쯤이라도 표를 줘서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당장 대선에서 제3세력이 당선될 수는 없어도, 몇십 년 뒤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감도 표했다. 류씨 역시 “거대 양당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정당이나 인물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전반에 대한 실망과 뚜렷한 대안 세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기대감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직장인 정모(24)씨는 “대단한 정치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냥 정상적이고 뚝심 있는 인물이면 좋겠다”라면서도 “이젠 (정치에 대한) 희망을 접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세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투표하거나 무언가를 해도 딱히 바뀌는 게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며 “이미 정치적 무관심 세대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고 체념했다.
취업준비생 신모(26)씨 역시 “(계엄 이후 정치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회의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계속 보고 있으면 솔직히 답답하다”면서 “사실 ‘나의 참여가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신씨는 “관심은 계속 가질 생각”이라고 했다.
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젊은 세대에게 큰 공부가 됐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취업준비생 김모(23)씨는 “이럴수록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실제로 이번(계엄 사태)을 계기로 주변 친구 중에서는 정치를 더 자세히 공부하려는 이들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2030세대에게는) 일종의 ‘민주주의 훈련’이자 역사적 교훈을 준 아주 생생한 교육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을 크게 각인시켜준 계기”라며 “그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모멘텀”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정치에 대한 관심과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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