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들이 긴급좌담회를 열고 “12·3 비상계엄 사태는 한국 보수정치의 근본적 문제점을 드러냈다”며 “(비상계엄 사태에서)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그리고 측근들이 보인 행태는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 부족과 맹목적인 권력 추구의 결과물”이라고 비판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0-10 위원회는 지난 5일 오후 3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긴급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좌담회엔 강원택, 안도경, 조동준, 박종희, 안두환, 송지우, 브랜든 아이브스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날 이들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특히 충격적인 것은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그리고 측근들이 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중대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사익 추구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보다 우선시된 결과이자 더 근본적으로는 무비판적 대립 구도에 갇힌 한국 보수의 한계와 가치부재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또 교수들은 이번 비상계엄이 시민의 기본적 자유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 수준을 여실히 보여줬다고도 지적했다. 이들은 “대통령은 단순히 야당에게 경고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민의 기본권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비상계엄을 검토했다”며 “이는 집회·결사의 자유와 국회 활동 제한이 위헌이자 위법일 뿐만 아니라 곧 시민 개개인의 참정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평소 ‘자유’를 강조해 온 대통령이 이처럼 가볍게 시민의 자유를 제약하려 했다는 점은 민주주의 국가 수장으로서의 자격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12·3 비상계엄조치와 국회 특수부대 투입을 정치학적으로 ‘친위쿠데타’로 규정하기도 했다. 친위쿠데타란 ‘집권세력이 초헌법적 방법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거나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친위쿠데타는 법의 지배 원리를 위반하는 것이면서 모든 권력은 미리 정해진 규칙과 방법에 따라 제한돼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성공한 친위쿠데타의 대표적 사례로 ▲1933년 히틀러의 국회방화령을 통한 나치체제 확립 ▲1952년 이승만의 부산정치파동 ▲1972년 박정희의 유신헌법 선포 등을 꼽으며 “이들 사례의 공통된 성공 조건은 군과 경찰에 대한 확고한 장악, 대중적 지지기반 확보, 정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명분의 축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에선 이러한 조건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친위쿠데타가) 시도됐다는 것을 차이점으로 꼽았다.
이들은 12·3 비상계엄조치가 1980년 신군부의 5·17 조치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고도 지적했다. 당시 신군부는 ‘시국수습책’이라는 명목 하에 세 가지 주요 전략을 구사한 바 있다. 첫째는 계엄의 전국 확대를 통한 군부의 통치권 장악, 둘째는 국회 해산을 통한 입법부 무력화, 셋째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비상기구 설치다. 이들은 “이 세 조치 모두 계엄법상 근거가 없었을 뿐 아니라, 당시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은 위헌적, 위법적 조치였다”고 했다.
한편 이들은 현 위기를 헌정질서의 틀 안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평화적 절차와 숙의 과정을 거쳐 헤쳐 나갈 수 있는 경로가 아직 존재한다”며 “현 위기는 헌정질서의 제도적 약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현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도 보여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 위기국면을 헌정질서의 틀 안에서 이겨내기 위해 시민의 집단지성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교수들은 현 위기 정국이 마무리된 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들은 “현 위기국면을 타개한 후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제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공론과 숙의가 복원돼야 하고, 헌법가치를 체득한 시민이 정치인으로 선출돼 공권력 행사의 권한을 위임받는 정치가 이뤄져야 하며, 제복을 입은 민주공화정의 시민으로서의 군과 경찰 등이 확립돼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엄중한 현 위기상황에서도 평상복을 입은 시민과 제복을 입은 시민이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현 위기상황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시위대는 평화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공권력은 헌법적 가치를 수호한다는 원칙 하에 시위대를 보호하고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