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7월 시리아에서 러시아 SU-27 전투기가 미 무인공격기에 대한 위협 비행을 위해 접근하고 있다. /미 공군

미국과 중·러간 대결 구도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전이 진행중인 흑해 지역을 비롯, 시리아 등 중동지역, 남중국해 등에서 이들 강대국의 함정·항공기간 근접 위협비행 또는 항해 사례가 늘고 있다. 전투기 등 항공기는 6~30m, 함정은 40~50m까지 근접하는 위기일발의 순간도 빈발해 의도하지 않은 우발적인 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 전투기가 미 무인기에 연료 등을 살포해 격추하는 등 도발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 러 전투기, 흑해서 연료 뿌려 미 ‘킬러 드론’ 격추

지난달 28일 외신들은 크림반도 인근 흑해 상공에서 미군 드론(무인공격기)과 러시아 전투기가 또 대치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공중우주군 감시 자산에 미 공군 무인기가 포착됐다면서, 무인기의 정찰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방공부대 소속 전투기들이 출격했다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달 27일에도 흑해 상공에서 자국 국경 쪽으로 비행하던 미군 정찰 드론을 격퇴했다고 밝혔었다. 올들어 수개월 동안 크림반도 흑해 공역과 시리아 상공에서 미 무인기 등에 대해 러 전투기가 근접 비행하며 위협하는 사례가 빈발했다.

지난 3월엔 흑해 상공에서 냉전 이후 처음으로 미 무인공격기 MQ-9 ‘리퍼’가 러시아 전투기의 도발로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 국방부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킬러 드론’으로 유명한 ‘리퍼’에 대해 러시아 SU-27 전투기가 수직 기동하면서 연료를 뿌리는 등 비행을 방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 중 전투기는 미 정찰기에 6m까지 근접 위협

미 리퍼의 프로펠러가 러 전투기와의 충돌 이후 손상된 모습도 나온다. 지난 7월엔 시리아 상공에서 러시아 SU-35 전투기 3대가 미 MQ-9 리퍼에 근접해 플레어(섬광탄)를 터뜨리며 리퍼의 비행을 방해하는 일이 이틀 연속 두차례 벌어졌다.

미·중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중국해에서도 양국 함정·항공기간 근접 위협비행·항해 횟수가 늘어나는 양상이다. 지난해 12월엔 중국 전투기가 남중국해에 비행 중이던 미 정찰기에 6m까지 근접하면서 미 정찰기가 회피 기동을 했다고 미군이 밝혔다. 당시 미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성명을 통해 “지난 21일 중국 해군 전투기가 RC-135 정찰기 기수 앞 6m 거리에서 안전하지 않은 비행을 했으며, 충돌을 피하기 위해 RC-135가 회피 기동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밝힌 뒤 관련 영상도 공개했다.

항공기가 다른 항공기에 다가가 공중 충돌 위험이 생기는 경우를 ‘근접비행 사고’, 영어로는 ‘니어 미스(Near Miss)’라고 한다. 미국에선 두 비행기 고도 차가 150m 이내면 ‘니어 미스’로, 30m 이내면 ‘심각함’으로 분류한다. ‘심각함’보다 훨씬 가까이 중 전투기가 미 정찰기에 접근했던 것이다.

◇ 미 이지스함에 41m까지 접근했던 중 구축함

바다에서도 미·중, 미(나토)·러 함정들 사이에 일촉즉발의 상황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20년1월엔 아라비아해에서 러시아 함정이 미 해군 이지스함에 55m까지 접근하며 근접 차단 기동을 실시했다. 미 해군은 “러시아 해군이 충돌 경고 경적을 무시하고 접근을 계속했다”고 밝혔다. 2018년9월엔 남중국해에서 중국 구축함이 미 이지스 구축함에 41m까지 근접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해상에서 선박 간 안전거리는 최소 500야드(450m)다. 하지만 군함의 경우 안전을 위해 2000야드(1800m) 이상을 유지한다. 바다에서 41m 거리는 충돌 직전의 일촉즉발 상황으로 간주된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두 차가 수십㎝ 이내로 스치듯이 지나가 가까스로 접촉 사고를 피한 것과 마찬가지다.

칼 슈스터 예비역 미 해군 대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종류의 근접 조우 때 진로 변경을 하려면 함장에게는 불과 수초의 시간만이 주어진다”며 “함정들이 1000야드(900여m)만 접근해도 함장들은 매우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 북 미그기, 2003년 미 정찰기 15m 근접 위협비행

일각에선 북한이 지난 7월 미 전략정찰기가 여러 차례 동해 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하면서 과거 사례를 들어 격추를 위협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런 위협비행 도발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시 북 국방성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미군의 RC-135 정찰기와 U-2S 고공전략정찰기, RQ-4B 글로벌호크 고고도 무인정찰기가 동·서해상에서 정찰행위를 했다”며 “조선 동해상에 격추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위협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2003년 미 전략정찰기를 상대로 최근 미국과 중·러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위협비행을 한 적이 있다. 2003년 3월 북 전투기들은 동해 공해상에서 대북 정찰비행을 하던 미국 RC-135 정찰기에 접근해 북한지역으로 유인을 시도했다.

2003년3월 동해 공해상에서 북한 공군 MIG-29 전투기가 미 RC-135 정찰기에 15~30m까지 근접해 위협비행을 하고 있다./미 공군

당시 RC-135는 북한 동해안에서 241㎞ 떨어진 공해 상공에서 정찰비행을 하던 중 북한 MIG-29 전투기를 만났다. MIG-29 조종사는 RC-135에 30m까지 접근해 날갯짓하며 ‘북한쪽으로 가자’는 수신호를 여러차례 보냈다. 하지만 RC-135가 이를 무시하고 동남쪽으로 급히 선회하자 MIG-29는 15m까지 접근해 RC-135 앞을 가로막아 비행하며 화기 지원 레이더를 조준했다.

◇ 미 조종사 “(북 위협 받은) 22분간 생애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

MIG-29는 조준이 빗나가자 애프터 버너(엔진 재연소 장치)를 점화했고 이에 따라 RC-135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다. 당시 RC-135 조종사는 미 언론 인터뷰에서 “상황이 벌어져 종료되기까지 22분간은 내 생애에서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이었다”며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로 무사히 귀환한 뒤 사흘간은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