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 아들 학교 폭력 문제로 논란이 된 정순신 신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을 취소했다. 검사 출신인 정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된 지 하루 만에 낙마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새 국가수사본부장 임기가 26일 시작되는 점을 감안해 그 전에 발령을 취소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26일 검증에 허점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국 수사 경찰을 총지휘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을 임명해 경찰 내부의 반발이 커지고, 인사 검증에도 문제가 드러나면서 책임론이 일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공직 후보자 자녀와 관련한 문제다 보니 걸러내는 데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인사 검증에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합법적인 범위에서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공직 후보자 자녀의 학교생활기록부 등은 인사 검증에 활용되는 공적 자료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 변호사가 아들이 고교 시절 동급생에게 학교 폭력을 가한 사실과, 이후 ‘전학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벌인 사실을 스스로 밝히지 않아 검증 과정에서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으로 채워진 인사 라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검찰 출신은 인사 검증 프리패스권이 주어지는 것이냐”라며 정부 인사 라인 문책을 요구했다. 고위 공직 후보자 물색·추천 등 인사 전반을 관장하는 대통령실 인사기획관(복두규)과 인사비서관(이원모), 후보자 검증을 담당하는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시원)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을 이끄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모두 검사 또는 검찰 일반직 출신이라 검사 출신인 정 변호사 검증을 느슨하게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경찰 내부에선 검사 출신을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하려다 보니 무리한 인사를 하고 이것이 부실 검증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과 법무부, 경찰청은 정순신 변호사 인사 검증 과정에서 아들 학교 폭력 관련 사안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당사자가 밝히지 않아 몰랐을 뿐 문제를 알고도 임명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정 변호사 인사 논란이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를 계기로 공분을 산 ‘아빠 찬스’ 문제와 최근 드라마 등으로 민감해진 ‘학교 폭력’ 이슈 모두를 건드렸다고 보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내정 하루 만에 정 변호사 발령을 취소하고 대통령실이 곧바로 검증 실패를 인정한 것도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정순신 아들 사건' 비판하는 野정책위의장 -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자녀의 학교 폭력 문제로 하루 만에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사건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은 이날 “인사 검증 개선 방안을 찾아 가겠다”고 했다. 공식 자료 확인에 한계가 있는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 관련 사안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자료만 살피는 ‘법대로 검증’만으론 부족하고 국민이 고위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철저히 검증하는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정 변호사에 대한 인사 검증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경찰청에서 두 갈래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 변호사는 지난달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에 대한 답변을 대통령실에 제출했다고 한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답변서에 문제가 없는지 검증했고, 경찰청은 정 변호사 범죄 경력 등을 조회하고 세평(世評)을 수집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대통령실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 변호사 답변에는 과거 아들의 학교 폭력 소송 관련 내용이 빠졌다고 한다. ‘사전 질문서’에는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행정소송이 있습니까’라는 문항이 있다. 이에 대해 정 변호사는 ‘아니요’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이 있는지를 묻는 것으로 이해해 그같이 답했고, 인사정보관리단도 정 변호사의 과거 소송 내역을 파악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 변호사의 아들 관련 행정소송은 지난 2019년 대법원에서 정 변호사 측 패소로 확정됐다. 세평 수집을 담당한 경찰도 정 변호사 아들 소송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검증 대상자 본인 외 가족에 대해선 알아보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나 정 변호사 아들 문제를 사전에 걸러낼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정 변호사 아들 학교 폭력 사건과 소송 문제는 이미 2018년 언론에 보도됐다. 당시 정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으로 있었다. 그런 만큼 검찰 출신 일부 인사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경찰도 세평 수집 단계에서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란 주장이다. 당시 언론은 가해 학생의 아버지를 익명이긴 하지만 ‘고위직 검사’라고 밝혔었다.

또 한 야당 관계자는 “검찰 출신이 포진한 인사 라인과 검사 출신 임명에 대한 경찰의 불만이 결합해 느슨한 검증으로 이어진 것 아닌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실 관계자는 “5년 전 보도는 가해 학생과 그 부모를 익명으로 보도해 후보자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검증 과정에서 알기 어려웠다”면서 “대통령이 학교 폭력에 대해 엄중하게 바라보는 상황에서 검증팀이 알고도 덮고 넘어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정 변호사 발령 취소에 국민의힘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사안의 심각성이나 국민 정서를 고려했을 때 국가적 중책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더 늦지 않게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정 본부장의 사의 표명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은 “인사 부실의 책임자를 문책하고 경찰을 검찰에 넘기려는 검찰 장악 업무를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민주당은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한 1차 검증 업무를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이 맡는 것에 대해서도 “검증 업무는 인사혁신처 산하에 두는 것이 맞는다”며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