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캐나다 정부가 F-22 스텔스기 ‘랩터’로 중국 정찰풍선을 격추한 지 6~7일 만에 미 알래스카주와 캐나다 상공에 출현한 미확인 물체(풍선)들을 또다시 F-22 전투기로 격추했다고 밝혔다. 비교적 값싼 구식 무기인 풍선을 격추하는데 대당 3억6000만 달러(4500여억원)에 달하는 세계 최강의 스텔스기인 F-22 가 잇따라 투입되고 있는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중 정찰풍선 격추는 사상 가장 높은 고도에서의 공대공 격추 기록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알래스카주 북동부 해안 상공에서 ‘고고도 물체’(high altitude object)가 발견돼 이날 오후 1시 45분쯤 전투기(F-22)가 출격해 격추했다고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해당 물체가 4만 피트(약 12㎞) 상공을 날고 있었고 크기는 최근 격추한 중국 정찰풍선보다 작은 소형차 크기라고 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11일 트위터를 통해 “캐나다 영공을 침범한 미확인 물체의 격추를 명령했고, 북미항공우주사령부가 (캐나다 북부) 유콘에서 이 물체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은 지난 4일 미 본토 영공을 침범한 정찰풍선을 F-22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격추했다. 당시 격추된 중국 정찰풍선은 버스 3대 크기였다. 당시 F-22는 고도 17.7km에서 AIM-9X 사이드와인더 공대공(空對空) 미사일을 발사해 고도 19.8km의 중 풍선을 격추했다. 이는 F-22가 실전 배치된 지 18년만의 첫 공대공 실전 기록이자, 사상 가장 높은 고도에서 이뤄진 격추 기록이 됐다. 격추한 전투기 조종사에게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제국군의 정찰 풍선을 떨어뜨린 공군 에이스의 이름을 딴 콜 사인(Call Sign) ‘프랭크’가 붙여졌다.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평가받는 F-22 '랩터' 스텔스기 비행 장면./미 록히드 마틴

이에 대해 왜 지대공미사일이나 F-15·16 등 다른 전투기를 사용하지 않고 굳이 가장 비싼 F-22까지 동원해 중국 풍선을 격추했는지가 궁금증을 낳고 있다. 우선 지대공 미사일의 경우 한국 공군도 보유하고 있는 패트리엇 미사일은 중국 풍선이 비행한 고도(18~20㎞)까지 올라가 목표물을 격추할 수는 있다. 패트리엇 미사일이 적 항공기를 격추할 수 있는 최대 고도는 24㎞ 정도다.

◇ 레이더 탐지 어려워 대공 미사일 격추도 힘들어

문제는 중 정찰풍선이 섬유로 돼있어 레이더에 아주 작게 탐지, 정확한 추적 및 조준이 어렵다는 점이다. 패리트엇 미사일은 레이더로 유도된다. 또 미국이 정찰풍선을 격추했던 미 사우스 캐롤라이나 해안에는 패트리엇 미사일이 배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패트리엇 미사일의 유효 사거리는 70~80㎞다.

그러면 헬기나 F-22 이외에 다른 전투기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헬기는 추진방식 특성상 공기(산소)가 희박한 고공(高空)에서는 비행이 힘들다. 지난 2005년 프랑스제 헬기가 에베레스트산(해발 8850m)에 착륙해 세계 신기록을 세운 적이 있지만 보통 헬기의 상승 한도는 4.5~6㎞ 정도다. 헬기로 18~20㎞ 고도까지 올라가는 것은 꿈도 꾸기 힘든 것이다.

미국은 미 본토에 F-22외에 F-35 스텔스기, F-15·16, FA-18 전투기 등을 배치해놓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4일 F-22가 투입된 데엔 우선 여느 전투기에 비해 높은 실용 상승한도가 꼽힌다. 전투기도 헬기와 마찬가지로 높은 고공으로 올라갈수록 엔진을 가동하기 힘들다. 엔진 연소에 필요한 공기(산소)가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F-22의 실용 상승한도(고도)는 15㎞ 이상, 최대 상승한도는 20㎞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 F-35, F-16, FA-18 전투기 등은 15km 이상 고도서 작전 곤란

최대 상승한도는 무장 없이 일시적인 기록을 세울 수 있는 최대 고도이고, 실용 상승한도는 비교적 안정적인 작전을 살 수 있는 고도다. 이번처럼 중국 풍선을 추적하면서 미사일을 쏘는 실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선 실용 상승한도가 중요한 성능이다. F-22의 프랫 & 휘트니 F119엔진은 마하 1.5의 초음속 순항을 할 수 있는 슈퍼 크루즈 능력과, 전투기 방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추력편향 기능 등 강력한 성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F-35나 F-16, FA-18 등은 실용 상승한도가 5만 피트(15㎞) 정도여서 18㎞ 이상 떠있는 중 풍선을 격추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한 예비역 공군 장성은 “KF-16 등 우리 공군 전투기로 15㎞ 이상 올라가 비행 훈련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국제노선을 운항하는 여객기는 보통 9~12km 고도를 비행한다. U-2나 SR-71 정찰기는 최대 25~30km까지 올라갈수 있지만 이는 특수한 전략정찰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F-15의 경우 실용 상승한도가 19.8㎞에 달해 고도상으로는 중 풍선을 격추할 능력이 있지만 작전지역 가까이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 방공임무를 맡고 있던 F-15C/D는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퇴역시키기로 해 현재 미 본토 방공임무는 F-22가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F-22가 미 주력 제공전투기로 위협에 가장 먼저 대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F-22의 방공임무 거점은 미 본토에선 버지니아주 랭글리 기지, 알래스카에선 엘멘도르프 기지, 하와이에선 히캄 기지인데 랭글리 기지는 지난 4일 중 풍선이 격추된 사우스 캐롤라이나 지역과 가깝다.

◇ 기관포 대신 열추적 미사일을 쓴 이유

10일 알래스카에서 미확인 물체를 격추한 것도 엘멘도르프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F-22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인 F-22는 지난 2005년부터 총 195대가 미 공군에 도입됐다. 길이는 18.9m, 폭은 13.5m, 전투행동반경은 2177㎞, 최대속도는 마하 2.5에 달한다.

일각에선 값싼 기관포탄 대신 한발에 7억원이 넘는 AIM-9X 미사일을 사용한 데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전문가들은 기관포탄으로 대형 풍선(기구)을 격추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고 포탄이 지상에 떨어져 의도하지 않은 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1998년 캐나다에선 기상 기구가 고장이 나 제멋대로 떠다니자 격추하기로 하고, CF-18 호넷 전투기 2대가 20㎜ 기관포를 1000발 넘게 쐈는데 기구는 계속 비행해 아이슬란드까지 날아갔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이 F-22 스텔스 전투기 등을 동원해 자국 영토에 진입한 중국의 '정찰 풍선'을 격추하는 모습. /미국 해군연구소 트위터 캡처

중 풍선이 버스 3대 크기에 달했지만 AIM-9X 미사일 격추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AIM-9X는 열추적 방식인데 풍선이 영하 수십도의 외부(고공) 기온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어 탐지·추적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공개된 영상을 보면 AIM-9X 미사일이 거대한 풍선에 직접 명중한 것이 아니라 풍선 밑에 달려 있는 태양열 패널 및 각종 센서 연결부에 명중한 뒤 풍선이 폭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 북한이 중 정찰풍선 벤치마킹할 가능성 우려도

한편 일각에선 북한이 중 정찰풍선을 벤치마킹해 고공 정찰풍선이나 기구를 개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북한은 정찰위성이 없어 정찰풍선은 북한 입장에선 가성비 있는 정찰수단이 될 수 있다. 북한도 20㎞ 정도 고공에서 운용하는 정찰풍선을 개발한다면 우리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F-15K 전투기 정도만이 이를 격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군 F-15K의 실용 상승한도는 19.5㎞ 가량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