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탈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등 한국 독립을 위해 애쓰다 한국 땅에서 잠든 영국인 ‘배설’ 선생의 동상이 고국에 세워진다.

국가보훈처는 영국 언론인으로서 구한말 대한제국의 독립에 헌신한 고(故)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동상을 영국에 건립하는 계획을 추진한다고 6일 밝혔다. 영국에 한국 독립운동가의 동상이 건립되는 것은 처음이다.

영국을 방문 중인 박민식 보훈처장은 지난 3일 베델의 손자 토머스 오언 베델을 만나 이번 동상 건립 계획을 공개했다. 박 처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과 영국은 6·25전쟁을 통한 호국의 혈맹관계이고 그 이전 독립운동으로부터 보훈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며 “영국에 첫 해외독립운동가 동상 건립을 추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베델 동상 건립안은 한영 수교 140주년과 6·25 정전 70주년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보훈처는 조만간 베델 출생지이자 생가가 있는 브리스틀시에 동상 건립 의사를 전하고 세부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손자 토머스 오언 베델은 “대한민국은 우리가 찾지 못한 생가를 직접 확인하고, 표지판 작업에 이어 동상 건립까지 추진하는 등 과거의 인연을 소중히 하는 대단한 나라”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델은 1904년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 신문의 대한제국 특파원으로 부임하면서 한국과 연을 맺었다. 러일전쟁 취재가 주임무였지만 일제의 만행을 보고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고 결심하고, 양기탁 등 독립운동지사들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대한매일신보 사장으로서 그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폭로하고 고종의 밀서를 보도하는 등 일본의 침탈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국채보상운동을 지원했다. 그는 자신의 영어 이름과 발음이 비슷하면서 언론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배설(裵說)’이라는 이름을 썼다.

베델 선생을 눈엣가시처럼 여긴 일제는 영국에 추방을 요구했다. 추방 소송 중 건강이 악화한 베델 선생은 1909년 5월 1일 37세로 순국,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안장됐다. 정부는 1950년 베델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