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전투기·탄도미사일·포격 위협 등 연쇄 도발은 13일 밤부터 14일 밤까지 하루 사이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지난 12일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발사한 지 하루 만에 대규모 무력시위로 도발 수위를 끌어올린 것이다. 특히 북한은 동·서해 완충구역에 이날 새벽 170여 발, 저녁 390여 발 등 총 560여 발의 포격을 가했다. 이는 완충구역 등 MDL 일대에서 일체의 적대 행위를 금하기로 한 ‘9·19 남북 군사합의’를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다. 북 포격지와 가까운 서해 백령도·연평도 주민들은 밤낮으로 창문이 흔들리고 폭음이 이어져 불안에 떨기도 했다. 앞으로 9·19 합의를 무시한 고강도 도발이 속속 터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래픽=김현국

북한 연쇄 도발의 시작은 상공에서였다. 북한 전투기 등 군용기 10여 대는 13일 밤 10시 30분부터 14일 0시 20분까지 50분간 전술조치선(TAL) 이남을 넘어 위협 비행을 했다. TAL은 북한 전투기의 빠른 속도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우리 군이 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20~50㎞ 북쪽 상공에 가상으로 설정한 선이다. 북 군용기들은 서해와 서부 내륙, 동부 내륙을 각각 NLL 북쪽 12㎞, 비행금지구역 북쪽 5㎞(MDL 북쪽 25㎞), 비행금지구역 북쪽 7㎞(MDL 북쪽 47㎞)까지 근접 비행하고 북상했다. 합참은 “우리 공군은 F-35A를 포함한 우세한 공중 전력을 긴급 출격시켜 대응 태세를 유지했다”면서 “북한 군용기 비행에 상응하는 비례적 대응을 했다”고 밝혔다. 군은 당시 후속 지원 전력과 방공포대 전력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9·19 합의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체결한 것이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남북으로 10~40㎞ 이내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정찰 활동은 물론 일체의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합의 체결 이후 북 군용기가 이번처럼 비행금지구역 코앞까지 접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번째는 바다였다. 북한은 오전 1시 20분부터 1시 25분까지는 황해도 마장동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130여 발, 2시 57분부터 3시 7분까지는 강원도 구읍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40여 발의 방사포 등 포병 사격을 했다. 우리 영해에 관측된 낙탄은 없었지만, 탄착 지점은 9·19 합의에 따라 사격이 금지된 NLL 북방 동·서해 해상완충구역 안이었다. 이에 대해 합참은 “명백한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2019년 11월 창린도 방어부대의 해안포 사격 등 과거에도 9·19 군사합의 위반을 한 적이 있다.

세 번째는 미사일이었다. 북한은 이날 오전 1시 49분쯤에는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1발을 발사했다.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700여㎞, 고도는 50여㎞, 속도는 약 마하 6(음속 6배)으로 탐지됐다. 전투기 비행, 해상 포격, 탄도미사일 발사 등 육해공 3중 도발을 벌인 것이다.

네 번째는 다시 바다였다. 북한은 이날 오후 5시 2분쯤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강원도 장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90여 발의 포병 사격을 했다. 오후 5시 20분부터 오후 7시까지는 서해 해주만 일대에서 90여 발, 장산곶 일대에서 210여 발의 포를 쐈다. 포는 9·19 합의로 설정한 동·서해 완충구역 내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북의 연쇄 도발에 국가안보실은 김성한 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했다. NSC 상임위원들은 우리의 정당한 사격 훈련을 빌미로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위반하면서 해상완충구역 내 포사격을 감행하고, 위협 비행 및 탄도미사일 불법 발사 등 적대 행위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국방부는 서해지구 군 통신선으로 대북 전통문을 보내 9·19 합의 위반을 지적하고 합의 준수와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군 안팎에선 북한이 지난 12일 서해를 겨냥해 순항미사일을 쏜 데 이어, 서해상으로 전투기·포격 도발을 집중함에 따라 북한이 서해 인근에서 국지 도발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