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꼬투리 안에 필로폰이 숨겨져 있다. 국정원은 이 같이 교묘한 수법의 마약 밀반입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일본 야쿠자·중국 삼합회(三合會)·러시아 마피아 등 국제 범죄조직과 연계된 마약 범죄가 최근 4년 사이 국내에서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범죄조직들이 한국을 마약 거래의 ‘거점’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등에 따르면, 국제 마약조직들은 마약을 정식 수출입 화물에 교묘히 숨겨 밀반입해 국내에 유통하거나 제3국으로 밀반출하며 ‘원산지 세탁’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운반책이 마약을 직접 몸속에 숨겨 국내로 들어오는 수법에서 진화한 것이다. 지난해 7월 부산 세관에선 멕시코발 해상 화물을 통해 헬리컬 기어(항공기 부품)에 필로폰 403㎏이 숨겨진 것이 적발됐다.

모발 영양 크림에 케타민(마취제 일종) 979g이 숨겨져 있는 것이 적발됐다. /수사당국 제공

국제우편(EMS)·특송 화물을 악용한 마약 밀반입 수법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3월엔 국제우편을 이용해 모발 영양 크림에 케타민(마취제 일종) 979g을 은닉했다가 걸렸고, 입욕제에 필로폰 4000g을 숨겨 국제우편으로 들여오다 적발됐다. 통조림 안에 비닐에 싼 대마초를 감추거나 필로폰을 땅콩 꼬투리나 인형 속에 숨기는 사례도 있었다. 마약류는 냄새가 독특해 탐지견에게 쉽게 발각되곤 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향이 진한 모발 영양 크림이나, 입욕제 등에 감추려 했다는 분석이다. 올 5월 태국발 국제우편을 통해 불상(佛像) 안에 야바(합성 마약) 1만9968정을 넣어 반입하려다 적발된 일도 있었다.

정보·수사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국내에서 적발된 마약류는 2020년 321㎏에서 4배 이상으로 늘어나 1295㎏에 달했다. 154㎏이 적발된 2017년과 비교하면 8배로 급증한 수치다. 통상 필로폰 1회 투여량이 0.03g인 만큼, 마약 종류에 따라 수백만에서 수천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규모다. 단속 금액으로도 4500억원 상당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마약 사범도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1만명대다. 2017년 932명이던 국내 체류 외국인 마약 사범 수도 지난해 2339명으로 치솟았다.

‘마약청정국’이었던 한국은 최근 인터넷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젊은 층을 비롯해 마약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필로폰의 경우 동남아보다 수십 배 비싸게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쿠자·삼합회 등 국제 범죄 조직들 사이에서 ‘한국에선 수익률이 높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 이들이 국내 마약 밀반입·유통 시장을 확장하려는 것으로 전해졌다.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한 장면. 한인 마약왕 전요환(황정민·오른쪽)과 그를 체포하려는 국정원의 작전에 협력하는 강인구(하정우)가 서로 바라보고있다. 전요한은 실존 범죄사범 조봉행을 모티브로 했다. 국정원은 조봉행을 오랜기간 추적해 검거했다. 조씨는 2012년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형을 살다 2016년 건강이 악화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
국정원 전경. 본관 앞에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석이 세워져있다. /국정원

국정원은 드라마 ‘수리남’의 실존 인물인 마약왕 조봉행(2016년 수감 중 사망)씨를 국제 공조로 검거했다. 또 ‘텔레그램 마약왕’ 박모씨, ‘아시아 마약왕’ 호모씨, 캄보디아 송모씨 등 지난 3년 사이 거물급 마약 조직 총책 6명을 잇달아 검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대부분은 송환돼 국내 사법 당국에 넘겨졌다. ‘전 세계’라고 불린 ‘텔레그램 마약왕’ 박씨는 국정원 등 한국 당국과의 공조 작전으로 잡혔지만 교민 3명 살해죄도 있어 징역 60년형을 받아 필리핀 교도소에서 징역형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