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퇴임이 17일 앞으로 다가왔다. 문 대통령 부부는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 이후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로 들어갈 예정이다. 현장을 찾아가 보니 공사는 마무리 단계였다. 주민들은 “전직 대통령이 거주하게 되면 외지인들의 관심과 방문이 늘어나 혜택을 볼 수도 있지만 소란스럽고 피곤한 일도 발생할 수도 있다”며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분위기였다. 문 대통령 부부가 취임 전 거주하던 양산 매곡마을 주민들은 “퇴임 후에도 돌아와 살기를 바랐는데 무산돼 안타깝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매각한 전 사저 가격이 일반적 시세보다 비싸다는 말도 나왔다.

왼쪽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살기로 한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1년여 만에 신축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오른쪽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 2월 판 경남 양산 매곡동 전 사저. 시세보다 비싸다는 평가를 받는 매각 대금 26억여 원을 놓고 인근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최승현 논설위원

◆번화가 인접해 인파 몰리는 평산마을, 잊힌 삶 가능한가?

문 대통령 평산마을 사저는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인 통도사 인근에 있었다. 사찰 주변으로 식당, 찻집, 모텔 등이 들어서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현재는 코로나로 영업을 중단한 상태지만 대형 놀이공원 통도 환타지아와 콘도 등도 있었다. 관광객이 몰리는 번화한 지역인 것이다. 통도사에서 약 2㎞쯤 이동하자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평산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진입로에서는 도로, 전기 공사 등이 새로 진행되고 있었다. 젊은 세대 취향의 카페도 여럿 있었는데 주민들은 “문 대통령 입주가 확정되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작년 4월 시작된 사저 신축 공사는 최근 가림막을 철거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2630.5㎡인 터를 10억6401만원에 매입한 뒤, 오랜 친구인 건축가 승효상씨에게 설계를 맡겼다. ‘허가되지 않은 인원 출입, 촬영 행위 제한’이라는 팻말과 함께 취재를 가로막는 경비원들이 있어 집 안으로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단순하고 깔끔한 구조였다. 집 뒤로는 ‘영남 알프스’라 부르는 영축산 끝자락이, 앞에는 꽤 넓게 펼쳐진 논이 있었다. 평일인데도 문 대통령 사저 공사 현장을 구경하겠다고 승합차 등을 타고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근에서 밭일을 하던 한 주민은 “문 대통령이 우리 동네로 온다고 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며 “몇몇 가게 장사는 잘되겠지만 벌써부터 동네가 시끄러워져서 좀 그렇다”고 했다. 문 대통령 부부는 평산마을을 비롯한 다섯 마을 이장들에게 부탁해 주민들에게 이사 떡을 돌렸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줄곧 “퇴임 후 자연으로 돌아가 잊힌 삶을 살겠다”고 했다. 하지만 평산마을과 인접한 통도사, 통도 환타지아 주변에는 벌써부터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몰려들면서 주차장이 빽빽해진다고 한다. 전 사저가 있던 매곡동과 달리 대형 명승지와 관광지가 지척에 있고 상당한 규모의 주차 공간도 마련돼있어 지지자들이 집결하기 쉬운 구조인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김해 봉하마을 주변에서 식당을 하던 사람 중 일부가 통도사 쪽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한 식당 주인은 “여기서 오래 장사한 사람들보다 문 대통령 지지층과 연결돼 새로 식당을 연 사람들이 더 큰 매출을 올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 모텔 사장은 “어쨌든 사람이 몰리면 일대 상권은 활발해질 수밖에 없으니 우리로서는 반가운 일”이라고 했다. 이곳 상인들에 따르면 최근 통도사 인근에 문 대통령 부부를 비판하는 현수막들이 걸렸다가 밤새 관공서 측이 전부 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 스님은 “사찰 일대가 정치적 분쟁 장소가 될 것 같아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한 주민은 “평산마을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양측으로 대규모 인파가 모여들 수 있는 번화한 공간이 나오기 때문에 문 대통령 말대로 잊힌 삶을 살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매곡동에선 전 사저 매각 가격 두고 논란 계속

문 대통령이 취임 전 거주했던 매곡동 전 사저 앞에는 아직도 경찰이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담 너머로 들여다본 집은 관리가 되지 않아 곳곳에 녹이 슬었고 잡초도 높게 자라 있었다. 마을에서 산 쪽으로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 집은 차 한 대도 조심해서 다녀야 하는 폭 3~5m의 좁은 1차로를 1㎞ 이상 올라가야 나온다. 문 대통령과 가까웠던 한 인사는 “매곡동 전 사저의 위치야말로 노무현 청와대에서 일하며 정치에 환멸을 느꼈던 과거 문 대통령의 은둔자적 기질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집 주변으로는 등산로를 따라 오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한 주민은 “퇴임하고 매곡동으로 돌아오셨으면 동네가 더 좋아졌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다른 주민은 “지난주에도 양산에서 다니시던 성당에 문 대통령 부부가 와서 주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셨는데 퇴임 후에는 좀 마음 편하게 지내셨으면 한다”고 했다.

매곡동 전 사저는 대지 면적 1721㎡, 연건평 329.44㎡ 규모로 지난 2월 20억6500만원에 팔렸다. 여기에 주변 주차장, 논, 도로 등의 가격이 5억5200만원으로 총 26억1700만원에 사저 일대가 거래됐다. 2009년 8억7100만원에 매입한 것을 13년 만에 세 배 가격으로 되판 것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평산마을 사저 신축을 위한 자금 마련 차원에서 매곡동 전 사저를 팔았으며 정상적 거래였다”고 했다. 하지만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하지 않은 직거래로 매매가 이뤄진 데다 아직도 등기부등본상으로는 소유자가 바뀌지 않아 일각에선 거래 과정을 투명하게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매곡동 주민들이나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매곡동 마을 중심부에 대지 면적 634㎡의 2층 집을 5억5000만원에 매물로 내놓았다는 한 주민은 “그나마 우리 동네에서 가장 교통이 편한 곳에 있는 우리 집도 이 가격에 사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마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문 대통령 전 사저가 26억에 팔렸다는 사실이 납득이 가질 않는다”고 했다. “대지 면적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 집은 평당 286만원 수준인데 안 팔리고, 문 대통령 전 사저는 평당 거의 400만원에 비공개로 거래가 된 것”이라고도 했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는 “위치도 그렇고 집도 오래됐기 때문에 주차장 등을 포함한다고 해도 상식적 시세를 감안할 때 20억원대 가격은 무리라고 판단한다”며 “다만 변수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대통령 부부가 살던 집이라는 것으로 이에 대한 가치는 결국 사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또 다른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는 “개인 간 거래라고 해도 국민들 관심이 높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누구한테 어떻게 팔았는지 속 시원히 공개하는 게 옳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 사저… 끊이지 않는 논란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후 사저 문제로 논란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토지 4262㎡, 건물 372㎡ 규모의 사저를 신축했다. 2007년 이 사저 땅값은 공시지가 기준으로 단위면적(㎡) 당 2640원이었는데 1년 만에 12만9000원으로 올랐다. 임야였던 땅의 지목이 대지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개인 명의로 국가 보조금을 지원받아 지열 방식의 냉·난방시설을 설치한 것으로 나타나 야당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사저를 지으려다 부지 매입 과정에서 특혜 논란이 불거져 이를 전면 취소했다. 이 전 대통령이 살게 될 사저 부지 일부를 아들인 시형씨가 사들이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국고가 손실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특검까지 출범하면서 이 전 대통령은 결국 과거에 살던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의 기존 건물을 허물고 3층 건물을 새로 지어 입주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서울구치소 수감 직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을 팔고 내곡동 사저로 이사하면서 40억 가까운 매각 대금 차액을 소송 대금 등으로 썼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출소 후 대구 달성군 쌍계리 사저로 입주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각각 상도동, 동교동으로 불렸던 취임 전 집을 허물고 같은 장소에 신축한 건물로 입주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 과정에서 공사비로 20억원을 쓰면서 IMF 외환 위기 상황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수억원을 들여 사저에 엘리베이터, 실내정원 등을 설치하면서 ‘호화’ 논란을 빚었다.

양산=최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