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 우크라이나 저격수의 러시아군 소장 사살 보도

우크라이나 저격수가 러시아군 고위 장성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2차대전 때 최강의 여성 저격수를 배출했던 우크라이나의 저격수 역사와 무기 등이 주목 받고 있다. 저격수는 이라크전에서 미군 1개 대대가 이라크 저격수 1명 때문에 한동안 꼼짝을 못하는 등 첨단무기가 발전한 현대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3일(현지 시간) 일부 외신들은 러시아 중부군사령부 제41연합군 부사령관 안드레이 수코베츠키 소장이 우크라이나 저격수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수코베츠키 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한 이래 사망한 최고위 러시아군 관계자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름(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했을 때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받은 바 있다.

UAR-10 반자동 저격소총으로 사격훈련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저격수. /우크라이나 국방부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국방부, 저격수 훈련 영상 이례적 공개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저격수 강국’이라고 지적한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 침공을 앞둔 지난 1월말 30여초 분량의 저격수 훈련 영상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영상에는 저격수들이 건물 내에서 반자동 저격총으로 표적을 조준한 뒤 사격하는 장면 등이 포함됐다.

특히 사격 위치가 파악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건물 총안구에서 떨어진 건물 내부에서 사격하는 모습들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저격수들이 사용한 총은 UAR-10 7.62㎜ 반자동 저격총으로, 최대 1.2㎞ 떨어진 표적을 정확히 맞힐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우크라이나가 자체 개발한 최신형이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사상 최고의 여성 저격수로 꼽히는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2차대전 때 독일군 309명을 사살해 '죽음의 숙녀'로 불렸다. /조선일보 DB

◇우크라이나, 2차대전 때 독일군 309명 사살한 여성 스나이퍼 배출

우크라이나는 2차대전은 물론 지금까지 사상 최고의 여성 저격수로 꼽히는 루드밀라 파블리첸코를 배출한 나라로 유명하다. 루드밀라는 2차대전 때 세바스토폴 공방전 등에서 불과 10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중 독일군 309명을 사살했다. 여기엔 독일군 저격수 36명도 포함돼 있다. 이 기록은 2차 대전은 물론 지금까지 여성 저격수로는 가장 많은 숫자다.

루드밀라는 우크라이나 빌라체르크바에서 태어나 14세에 가족들과 함께 키이우로 이주, 조병창에서 일하면서 사격 클럽에 가입해 사격훈련을 받았다. 키이우 대학에 진학해 역사학을 공부하던 중 1941년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붉은 군대’ 소련군에 자원 입대했다. 대학 출신 인텔리인데다 여성으로서 최전방에 나가 싸우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한 소련군 간부들은 그에게 간호병직을 제의했다고 한다.

구소련이 발행한 '사상 최고 여성 저격수'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기념우표. 루드밀라는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도 받았다. /퍼블릭 도메인

◇소련군, 부상한 루드밀라 구출 위해 잠수함까지 동원하기도

하지만 루드밀라는 사격 클럽에서 받은 사격 훈련 수료증을 꺼내 보이며 자신을 소총부대로 배치해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군에서 그의 요청을 수용, 훈련 후 저격수 보직을 받은 뒤 실전에 투입됐다. 오데사 전투와 세바스토폴 공방전에서 309명 이상의 독일군을 사살하는 데 성공, ‘죽음의 숙녀’(Lady Death)라는 별명을 얻고 독일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박격포 공격으로 부상을 입은 뒤 긴급 후송됐는데 소련 당국은 ‘전쟁 영웅’인 그를 구출하기 위해 잠수함까지 동원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뒤 저격수 양성 교육에 힘썼고, 1942년엔 미 백악관을 방문해 루즈벨트 대통령 영부인을 접견하기도 했다. 종전 후엔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았다. 2차대전 때 소련은 2000여명에 달하는 여성 저격수를 양성, 실전에 투입했었다.

◇러시아군, 시가전시 우크라이나 저격수들에 고전 가능성

지난달 말 러시아군의 본격적인 침공 전에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여성 저격수가 10여명의 적군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져 우크라이나군이 루드밀라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2차대전 때 처절했던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에서 242명 이상의 독일군을 저격해 영화 소재로도 종종 등장한 전설적인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도 우크라이나와 인연이 깊다.

그는 우크라이나 인근 우랄 산맥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고, 전후엔 키이우에서 공장을 운영하다 숨진 뒤에도 키이우에 묻혔다고 한다. 이에 따라 러시아군이 키이우 등 우크라이나 대도시에서 본격적인 시간전을 벌일 경우 우크라이나 저격수들 때문에 고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