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캔버라 국회의사당 내 대위원회실에서 열린 한-호주 정상 기자회견에서 스콧 모리슨 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1.12.13/연합뉴스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 선언에 대해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 모두 원론적인,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밝혔다”며 “호주도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자유와 안정을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종전 선언을 위해 중국, 북한과 타협해선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중 갈등 속에서 반중 노선을 걷고 있는 호주는 이미 미국의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을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대해 “한국 정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과 모리슨 총리는 이날 호주 캔버라 국회의사당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과 호주 취재진은 중국과 북한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문 대통령은 최대한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발언을 자제했지만, 모리슨 총리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언급,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 역할론’을 요구했다.

2021년 12월 13일 호주 캔버라 국회의사당 내 대위원회실에서 열린 한국-호주 K9 자주포 수출 계약 협정식 및 공동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 TV조선

문 대통령은 종전 선언에 대해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정책을 근본적으로 철회하는 것을 선결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대화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다”며 “남북 간에, 또 북미 간에 조속한 대화가 재개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 발언 직후 모리슨 총리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평화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면서 “호주는 그냥 관망하는 국가가 아니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유와 그리고 안정을 한반도에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명확한 비핵화 약속 없이 북한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에 대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에서도 참가 권유를 받은 바 없다”고 했다. 미국의 보이콧 결정에는 호주를 비롯해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국가들이 동참했다. 또 문 대통령은 “이번 호주 국빈 방문은 중국에 대한 입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다. 이번 호주 방문이 K9 자주포 수출 계약 등 때문에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호주 기자가 사드 문제로 한국이 중국에 경제 보복을 당한 것을 언급하며 “호주도 지금 경제적인 보복 조치를 당하고 있는데, 협력해줄 수 있느냐”고 한 것에 대해서도 직접 답변을 피했다. 대신 문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을 기반으로 삼으면서 중국과도 조화로운 그런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그렇게 노력을 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날도 미·중 사이의 전략적 모호성을 취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중국과 대만 간 양안 관계에서의 한국 입장에 대해서도 “오커스(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협의체), 이런 문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운용돼 나가기를 기대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반복했다.

호주 전쟁기념관서 한국전 전몰장병 추모 -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13일 캔버라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찾아 한국전 전몰 장병 이름을 새긴 벽에 꽃을 달고 있다. 문 대통령 오른쪽은 김정숙 여사. /연합뉴스

이에 대해 모리슨 총리는 한국을 ‘유사입장국’이라고 여러 차례 표현하며 중국 문제 등에 있어서 협력해달라고 압박했다. 모리슨 총리는 “한국도 인도·태평양 지역 문제와 관련해 타국의 강압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자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특히 남중국해 사안이 더욱 그러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양안 관계에 대해 “어떤 오판이 있다면 한국도 중요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그리고 역내에서 깊이 관여하고 있는 국가로서 많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가에 혜택을 줄 수 있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데이비드 헐리 호주 연방 총독과 오찬을 갖고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 등 한류 열풍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헐리 총독은 “한국 문화는 호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며 “호주에서 갈비 레스토랑 수가 급증하고 있고, 전 세계인과 마찬가지로 호주인들도 한국의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호주는 한국이 가장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진정한 친구”라고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