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의 임기 말에는 예외 없이 개헌론이 등장했습니다.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가 터져 나오고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집니다. 그러면 개헌론자들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그 원인이라며 분권형 개헌론을 띄웁니다. 정권의 핵심도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4·7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여당 안팎에서 예외 없이 개헌 얘기가 나옵니다.

여당 출신 박병석 국회의장이 개헌 전도사로 나섰습니다.박병석 의장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도 분권형 개헌을 얘기했습니다. 사실 박의장은 국회의장이란 지위 때문에 주목받겠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없는 분입니다. 정치권도 국민도 그가 얘기하면 크게 주목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자신의 소명을 개헌 전도사로 자처한듯 합니다. 계속 개헌을 얘기합니다. 박 의장은 지난달 말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 “정치가 계속 갈등과 혼란 속에 있는 요인은 헌법에 있다”면서 개헌을 얘기했습니다. 이철희 수석은 “잘 듣고 (문재인 대통령께) 잘 전해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서로 짜고 치는 대화 같기도 합니다. 새 지도부를 뽑은 더불어민주당도 개헌 군불 때기에 조만간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야권에선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분이 개헌론자입니다. 그는 재보선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개헌 논의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그리는 개헌 방법론은 이렇습니다. 유력 대선 주자를 밀어주되 ‘당선되면 권력분립형 개헌을 하고 2024년 총선과 대선을 같이 실시한다’ 뭐 이런 약속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다음 대통령 임기를 단축해 국회의원 임기와 날짜를 맞추는 것이죠.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대통령) 임기가 잘리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도 말합니다. “국민의힘 주자가 대통령이 된 들 야당이 180 석인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협치할 수밖에 없다. 협치 과정에서 개헌한다고 약속을 해야 한다.”

어떻습니까. 그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야권에선 김무성 전 대표도 대표적인 분권형 개헌론자입니다.

개헌으로 한국정치 만악(萬惡)의 근원처럼 여겨지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할 수 있다면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실제 여론조사를 해보면 개헌찬성은 항상 반대를 압도합니다. 국민들도 원론적으로는 5년단임형 대통령제가 문제가 많다고 여기는 겁니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고 한 명의 현직 대통령이 레임덕은 물론 ‘퇴임 후 안전’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능력이 검증되지도 않은 채 진영 대결 소용돌이 속에 당선됐다가 매번 퇴임 무렵 정치적 단두대에 올라가는 일이 반복돼 왔습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권이 개헌을 추진하려면 유리한 조건 한가지는 구비돼 있습니다. 바로 국회입니다. 국회 전체 300석 중 범여권이 180석입니다. 야권 의원 20명만 가세하면 개헌안 의결정족수(재적 3분의 2 이상)를 채울 수 있습니다.

국회 의석 분포가 개헌안 통과에 나쁘지 않은 지형입니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한다고 해서 국민이 이를 추인해 줄까요?

서울경제신문 김광덕 논설실장은 “지금시기 개헌론에는 약보다 독이 더 많다”고 했습니다. 무슨 독일까요? 첫째,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현 정권에 대한 ‘정권 심판론’이 유실됩니다. 개헌은 블랙홀입니다. 개헌논의가 불붙게 되면 모든 이슈를 빨아당깁니다. 야권은 사분오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개헌 카드는 현 정권 집권 연장을 위한 꼼수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겁니다.

둘째, 범여권이 180석인 상황에서 개헌 논의를 하면 개헌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 버릴 수 있습니다. 셋째, 개헌이 실제 추진될 경우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 등 헌법 정신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이 정권에서 개헌이 추진된 적이 있습니다. 2018년 3월 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실제로 개헌을 추진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기록용이었습니다. 그때 발의했다가 무산된 개헌안에는 토지 공개념 명시, 경제 민주화 강화, 수도를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 신설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유민주의 시장경제라는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내용으로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헌의 최종 관문은 국민입니다. 개헌을 하려면 국민이 동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시기 국민은 개헌 논의를 달갑지 않게 여길 가능성이 큽니다. 올해 동아일보 신년 여론조사를 보면 개헌 찬성(57.9%)이 반대(28.7%)의 두 배입니다. 하지만 개헌 시기에 대해선 차기 정부(58.8%)가 현 정부(29.2%)의 두 배입니다. 개헌엔 찬성하지만 임기 말 개헌은 부적절하다는 겁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는 개헌 기회였습니다. 국민 다수도 더는 제왕적대통령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분권형 개헌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지 않았습니다.오히려 제왕적 권력을 4년내내 마음껏 휘둘렀습니다. 그런데 이제와 권력을 분산시킬 개헌을 하자고 하면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정치권의 큰 손들이 자기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분권형 개헌을 하자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현행 헌법이 문제라면 정권 지지율이 높을 때 왜 분권형 개헌에 나서지 않았습니까. 또 왜 권력을 남용해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비판이 나오도록 했습니까.저는 보궐선거 패배이후 제기되는 여권을 중심으로 한 개헌론, 또 한 번의 춘몽에 그칠 것이라고 봅니다.


이동훈의 촉/개헌 바람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