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여 남은 가운데 청와대와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기업까지 ‘낙하산 인사' 형태로 진출하고 있다. 올해 새로 뽑아야 하는 공공기관, 공기업 등의 요직을 놓고도 청와대, 민주당 출신들이 물밑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고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권 초에 일어날 만한 일들이 임기 말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블랙리스트 유죄 판결이 ‘낙하산 인사'에 경고 메시지가 되기보다, “지금 임명되면 정권이 바뀌어도 눌러앉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부산은행 노동조합과 전국금융산업노조,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등이 2017년 7월 부산 남구 문현금융단지 부산은행 본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하산 인사 반대 주장을 하고있다./연합뉴스

최근 친여 인사들은 연달아 공공기관장 자리를 꿰찼다. 공항철도 사장에는 지난달 이후삼 전 민주당 의원이 취임했다. 2001년 공항철도 설립 이후 정치권 출신 사장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명보험협회 회장에는 작년 12월 3선 국회의원 출신의 정희수 전 의원이 취임했다. 그는 야당 출신이지만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보험연수원장에도 민병두 민주당 전 의원이 취임했다.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에는 조재희 전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이 사실상 내정된 상태다. 조 전 비서관은 작년 4월 총선 때 서울 송파갑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정구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도 최근 임기 2년짜리 IBK캐피탈 사내이사에 선임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으로는 지난달 2일 김경욱 전 국토부 2차관이 취임했다. 김 사장은 작년 총선에서 충북 충주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회의원들 사이에선 ‘연봉 높은 공공기관장이 되려면 오히려 낙선하는 게 좋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공공기관장은 연봉 1억에서 4억원까지도 받는다. 여기에다 업무추진비 등을 합치면 그액수는 두배로 높아진다.

그래픽=이철원 기자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자회사인 인천공항시설관리 사장에는 지난달 26일 황열헌 전 문화일보 편집국장이 취임했다. 2017~2018년 당시 국회의장이던 정세균 국무총리의 비서실장을 지낸 인사다. 한국교직원공제회도 작년 11월 신임 이사장에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이 취임하며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레임덕을 막고 국정 과제를 밀어붙이기 위해 정치인 등 낙하산을 대거 내려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 밖에 청와대 비서실 출신 A씨와 B씨는 작년 12월과 올해 1월 넷마블 상무, 삼성경제연구소 비상근고문 등 민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A씨의 경우 사표를 낸 지 3개월 만이었다. 비서실 소속의 C씨는 국제금융센터 이사로 갔다.

올해 상반기 공공기관 수십 곳의 기관장 교체를 앞두고선 여권 인사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전력(4월 21일)과 한국수력원자력(4월 4일)은 물론 중부·동서·남동 발전(2월 12일)과 서부·남부 발전(3월 7일), 석유공사(3월 21일) 기관장이 줄줄이 상반기에 임기를 마친다.

통상 정부 임기가 1년여 남은 상황에서는 공공기관 자리는 인기가 없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은 임기 중간에 물러나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임기를 보장받은 산하 기관 임원들의 사표를 받아내려고 한 혐의로 실형을 받으면서, 과거와 다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으니 ‘지금이 기회'라는 것이다. 정권 임기는 1년 남았지만 지금 임명되면 공공기관 임기는 보통 2~3년이 보장된다는 인식이다.

실제로 청와대와 민주당 등에서는 인사 로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 당직자, 보좌진들까지도 민간 기업 등으로 자리를 옮기니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라며 “청와대 한 비서관은 임기 3년짜리 재외공관 대사로 보내달라고 로비도 한다더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 근절”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