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적 접근법’이란 말이 있다. 문학평론에서는 작품 외적인 부분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작품 그 자체만 갖고 감상할 때 이 말은 쓴다. 정치·사회학에서도 영역은 다르지만 방법은 비슷하다. 가령 좌파 인사들이 북한에 대해 이런 말을 많이 쓴다. 북조선의 특질인 ‘수령영도 유일체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북한 주민의 여러 기이한 행태가 이해된다는 뜻이다. 표류한 어부들이 판문점에서 팬티만 남기고 남측이 제공한 옷을 죄 벗어버리고 선물까지 집어던지며 패악을 부리다 북으로 넘어간 일, 부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한 북한 꽃봉오리 응원단이 응원하려 이동하다가 김대중·김정일이 악수하고 있는 사진이 들어가 있는 현수막이 비를 맞고 있자 울부짖으며 달려가 현수막을 떼어내 잘 접어 숙소로 갖고 가 접히지 않게 다림질하고 뜨거운 김에 맞지 않게 말린 일, 이런 기괴한 모습들은 내재적 접근으로 파악해야 속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번에는 대한민국 해양수산부 국가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총살된 사건을 놓고 내재적 접근을 해보겠다. 지난 금요일 북한의 대남 공작부서에 해당하는 통일전선부가 보내온 통지문을 내재적 접근으로 분석해보겠다. 350여개 단어로 돼 있는 A4 한 장 남짓 분량의 이 통지문에 대해 “가짜다”라는 일부 논란이 있지만, 북한식 말투라는 원본이나 우리 말투로 돼 있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여기서는 일단 무시하겠다. 다만 전달 중간에 박지원 국정원이 뭔가 손질을 했다면 그것은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오늘 우리는 그 통지문 자체를 내재적으로 분석해보겠는데, 저들은 통지문에서 스스로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당한 진실을 공개하고 말았다. 아마도 ‘시신을 소각했다’는 잔혹성에 대해 한국 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국제 여론이 크게 나빠지자 이를 감춰보려다 다른 진실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말았다고 본다. 아마 지금 북한 군부와 평양 지휘부에서는 이 사과문 내용을 놓고 상당한 사후 진통이 있을 것 같다.

일단 이 통지문은 제목이 ‘청와대 앞’ 이라고 돼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는 흔히 개인에게는 이름 뒤에 ‘귀하’ ‘님께’ 이런 표현을 쓰고 기관으로 보낼 때는 ‘귀중’이란 말을 쓴다. 그런데 북한 통전부 통지문은 대뜸 ‘청와대 앞’이라고 돼 있다. 미국에 보내는 편지, 러시아에 보내는 편지에도 ‘백악관 앞’, ‘크렘린궁 앞’ 이렇게 쓰는지 궁금하다.

1)통지문은 “정체불명의 인원1명”이 “우리 군인들에 의해 사살된 사건”이라고 했다. 이것은 북한 스스로 이번에 피살된 우리 측 공무원이 ‘무장 침입자’가 아닌 비무장 상태였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고, 자기들이 ‘사살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국제형사재판소에 이 사건이 회부될 경우 이것은 범죄 자백과 같은 증거로 채택될 것이다.

2)통지문은 이 사람을 “부유물을 타고 불법 침입한 자”라고 했고, “80미터까지 접근하여 신분 확인을 요구하였으나…”라고 말했다. 저들은 여기서 해수부 공무원이 ‘부유물을 타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이 부유물이 고무튜브인지, 고무보트였는지, 크기는 얼마만 했는지, 노를 저을 수 있는 도구가 있었는지, 등과 관련이 있고, 그 점이 자진 월북 의사가 있었느냐는 논란과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고무 튜브는 몸이 상당 부분 물속에 잠겨 있어야 하는 부유물이고, 고무보트는 몸이 배에 타고 있는 것이나 같고 노를 저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3)또 통지문은 “80미터 거리에서 신분 확인을 했다”고 했으나 이것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 게다가 선박 소음까지 섞여 있는데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더구나 해수부 공무원은 무려 27시간 넘게 바다를 표류한 상태였기 때문에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다고 추정해야 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 역설적으로 ‘북한군이 현장 상황에 대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4)통지문은 해수부 공무원에게 신분 확인을 요구하자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라고 대답했다는 것을 적시했다. 이 부분 역시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는 진실이 담겨 있다고 본다. 북한 통지문은 해수부 공무원이 ‘나는 대한민국 해수부 소속 누구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5)북한 통지문은 북한 군인들이 “정장(艇長)의 결심 밑에” 총격을 가했다고 적시했다. 북한은 왜 굳이 대위 계급쯤 되는 함장을 사살 명령을 내린 자로 적시했을까. 북한 해군사령부, 평양지휘부, 최고 정점은 사살 명령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변하려는 것일까. 물속에 무려 6시간 동안이나 담가 놓은 채 갖은 취조를 다 하고 상부와 교신을 계속했으면서, 심지어 대한민국 해수부 소속 공무원이란 신분까지 파악했으면서, 사살 명령을 일개 함장이 내렸다고 말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 차관급 탈북자인 리정호 씨는 “남한에서 넘어온 사람을 사살하는 것은 김정은의 지시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통지문이 “정장의 결심 밑에” 사살했다고 밝힌 것은 ‘북한식 꼬리 자르기’라는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6)통지문은 군 사격이 “해상경계근무 규정이 승인한 행동준칙에 따라” 이뤄졌다고 했고, 부유물을 불에 태워버린 것은 “국가비상방역 규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그렇다. 한국 국민이 총살된 것에 대해 ‘미안하긴 하다, 그러나 우리 잘못은 전혀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자기네 규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고 따라서 책임자 처벌도 없을 것이란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셈이다. 하긴 최고 정점에서 내려온 사살 명령이라면 어떻게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겠는가.

7)통지문은 북한군이 “10여 발의 총탄으로 사격하였으며, 이때 거리는 40~50미터였다”고 밝혔다. 자동화기를 사격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40미터 거리라면 과녁의 눈·코·입을 따로 겨냥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거의 탈진 상태에 있는 비무장 공무원을 향해 한두 발도 아닌 10발이 넘는 총격을 가했다. 이미 숨이 끊긴 시신까지 분해해버릴 생각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는 끔찍한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통지문의 이 부분 역시 저들의 엽기성과 잔혹함을 스스로 자백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8)통지문은 현장 상황을 묘사하면서 사격이 끝난 뒤 “10미터까지 접근”하여 보니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으며 많은 양의 혈흔이 확인되었다”고 했다. 이 대목 역시 저들의 사살 총격이 얼마나 잔학무도 했는지 스스로 밝히는 진실일 수 있다. 무차별 총격으로 시신이 분해되어 조각조각 흩어져버렸다는 뜻일까. 그래서 혈액만 낭자하게 남아 있었다는 뜻일까. 앞으로 그날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남북의 공동조사가 어디까지 이뤄질지, 그리고 시신 혹은 유류물 회수 작업이 어디까지 성과를 거둘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국민들은 큰 기대도 안 할 것이다.

북한 통일전선부가 보냈다는 ‘청와대 앞’ 통지문, 요약하면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국제적인 형사 재판, 민사상 손해배상 재판에 회부될 경우 통전부 통지문은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유일한 ‘피의자 진술서’로서 매우 중요한 자백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사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