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참석으로 다자 외교 무대에 데뷔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일반적인 국제 관례대로 일정을 소화했다. ‘불량 국가’ 혹은 ‘은둔 왕국’ 북한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정상적 국가’의 ‘정상적 지도자’처럼 행동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후계자 신고식’을 위해 만 12세 된 딸 김주애를 동행하는 ‘4대 세습’ 왕조의 비정상적인 모습이 여전히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김정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가졌다. 러시아 매체들은 두 사람의 모두 발언을 약 10분간 생중계로 보냈다. 과거 미북·러북 정상회담 때 일부 장면이 생중계된 적은 있지만 제3국에서 열린 다자 외교 계기에 열린 회담에서 김정은 발언이 생중계된 건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다. ‘골초’로 알려진 김정은의 굵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방송됐고 김정은은 푸틴을 “당신” 또는 “대통령님”으로 불렀다.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김정은과 푸틴 대통령은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 오찬에 참석한 후 푸틴의 전용 차량인 아우르스 세나트 리무진을 함께 타고 댜오위타이(釣魚臺) 회담장으로 이동했다. 차에 타기 전 서로 상석을 양보하는 듯한 손짓도 주고받다가, 푸틴이 상석인 조수석 뒷자리에 앉고 김정은이 차량 뒤를 돌아가서 옆자리에 타는 장면도 생중계됐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도 여기에 동승했다.
김정은은 이날 열병식 행사장에서 만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짧은 대화를 나눴고, 그 장면이 담긴 사진도 벨라루스 측을 통해 공개됐다. 벨라루스 국영 통신 등은 김정은이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편한 시기에 북한에 와줄 것을 제의했다고 전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다자 외교 무대에서 처음 대면한 다른 나라 정상에게 예정에 없던 ‘깜짝’ 방북 제의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벨라루스는 북한과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한 국가다. 김여정은 지난 1월 북한이 벨라루스 측에 정상회담을 제의했다는 보도를 공개 반박하기도 했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는 “김정은이 중·러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해서 앞으로 더 넓은 국제 사회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김정은은 줄곧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로 보이고 싶어 했는데 중국이 이번에 그런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라며 “김정은이 주장한 (남북) 2국가론도 그런 배경이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우리 측 참석자인 우원식 국회의장을 피하지 않고 악수를 나눈 것도 이런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일 평양 출발 당시 검은 인민복 차림이었던 김정은은 2일 베이징 도착 이후 양복 차림으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딸 김주애를 대동해 베이징역에 내릴 당시 검은 양복에 붉은색 넥타이를 맸던 김정은은 열병식장에 다른 정상들과 비슷한 양복 차림에 연한색 넥타이를 했다. 김정은을 수행한 최선희 외무상 등 다른 간부들도 인민복 차림에서 정장으로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김정은의 이런 대외 행보에 대해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대내적으로는 김정은 리더십 하에 북한이 발전하고 있다는 모습을 심어주고 싶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