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우리 공무원을 해상에서 쏴죽이고, 기름을 부어 불태운 사건이 지난 22일 밤 발생했다고 군 당국이 24일 밝혔다.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을 죽였다는 점에서 2008년 7월 금강산에서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관광객 박왕자씨 사건과 유사점이 있다. 하지만 북한이 “우발적 사고”임을 주장했던 당시와 달리 이번엔 조난 상태의 민간인을 취조 후 총살하고 시신까지 불태웠다는 점에서 죄질이 훨씬 나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8년 7월 우리 관광객이 금강산에서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했다./조선DB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박왕자씨는 2008년 7월 11일 오전 북한군 초병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당시 정부는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박왕자씨가 11일 오전 4시30분쯤 숙소인 비치호텔을 나가 해수욕장 주변을 산책하던 중 오전 5시쯤 장전항 북측 구역 내 기생바위와 해수욕장 중간지점에서 북측 초병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박씨가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북측 군 경계지역에 진입했고 초병의 정지 요구에 불응하고 도주해 발포했다고 주장했다.

연평도 실종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지난 21일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이 어업지도선에 타고 있던 공무원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연합뉴스

우리 측의 검안 결과, 박씨는 등에서 가슴을 관통하는 부분과 왼쪽 엉덩이 부근에 각각 한 발씩 총상을 입었으며 사인은 총상으로 인한 호흡부전이었다. 등 뒤에서 조준사격을 받아 숨진 것이다. 1998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뒤 북한군의 총격으로 우리 관광객이 사망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되는 등 남북 관계에도 적잖은 파장을 가져왔다.

이번 사건은 범행 장소와 살해 수법은 달랐지만 일부 유사성이 있다. 북한군의 기강 확립이 강조되는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2008년 박씨 피살 당시 금강산 지역의 북한군 부대는 군기 강화 기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내용은 2009년 4월27일 주한 미 대사관 관계자가 한국 측 인사와의 접촉을 통해 파악한 내용을 근거로 작성·보고한 외교 전문에 포함됐다. 이 전문은 한국 측 인사를 인용해 “금강산 지역의 북한 병사 및 감시병들은 남한 관광객들과의 잦은 접촉 이후 과도하게 해이해지는 경향이 있었다”며 “그 때문에 북한군 당국자들은 주기적으로 군기를 강화하기 위한 훈련을 실시하는데 (박씨에 대한) 그 총격은 그런 훈련 기간에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번 우리 공무원 총격·화형 사건은 지난 7월 탈북민 월북 사건 이후 북한이 경계태세를 크게 강화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남북 양측의 발표를 종합하면, 20대 탈북민 김모씨는 지난 7월 18일 강화도에서 헤엄을 쳐 북한 지역으로 넘어간 뒤 아무 제지 없이 개성에 들어갔다. 이 사건 직후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당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열어 관련자 문책을 강조했으며, 북한군의 경계수위는 한층 강화됐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입을 우려한 조치였다.

이같은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 사건은 살인의 의도성, 살해수법의 잔인성 측면에선 판이하다. 박왕자씨 사건 당시 북한은 경계병의 정지 명령에 불응한 박씨에게 사고의 책임을 돌리면서도 “우발적 사고"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북한은 24시간 이상 표류해 기진맥진해 있던 사람을 물밖으로 건지지도 않은 채 ‘수중 취조’ 후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게다가 기름을 붓고 시신까지 불태웠다. 저항이나 도주의 의도가 없는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