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2일 ‘내란에 참여·협조’한 혐의로 공무원 89명을 파면, 정직 등 징계하고 82명에게는 주의·경고 조치를 내리라고 각 부처에 요구했다. 징계와 별개로 110명에 대해선 수사도 의뢰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대장으로 진급한 주성운 지상작전사령관도 포함됐다. 징계 대상자의 79%, 수사 의뢰된 사람 중 98%는 군과 경찰이었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발표했다. TF는 지난해 11월부터 석 달간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75만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왔다. 총괄 TF 단장인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12·3 불법 계엄은 정부의 기능 전체를 동원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던, 위로부터의 내란”이라고 주장했다.
징계 대상 공무원 89명 중 70명은 군인(48명)과 경찰(22명)이었다. 다른 부처에 비해 상관 명령을 엄격히 따르도록 요구받는 기관 소속이다. TF는 이들이 군인복무기본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상관 명령에 복종했다고 하더라도, 계엄 선포가 위헌·위법이었기 때문에, 명령과 지시를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면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TF는 군인 108명과 외교부 공무원 2명 등 110명에 대해선 TF 조사에 협조하지 않거나, 징계와 별도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한편 12·3 계엄 당시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이 내란 행위의 중요 임무에 종사했다”고 판단했다.
◇상명하복 의무인 軍·경찰에… 내란TF “지시 따른게 잘못”
이날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가 발표한 징계 대상자에는 군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 부처의 징계 대상 89명 가운데 군인이 48명(54%)이었고, 주의·경고를 받은 82명 중에도 75명(91%)이 군인이었다. 징계, 주의·경고와 별개로 수사 의뢰된 110명 중에서도 108명이 군인이다. 국방부는 “수사 인력 120여 명을 투입해 장성 및 영관급 장교 등 860여 명을 조사했다”고 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이날 주성운 지상작전사령관(대장)이 계엄에 연루된 의혹이 확인됐다며 직무에서 배제하고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지상작전사령관은 육군 전체 병력의 70%에 달하는 20만명 이상을 지휘해 전방 방어를 총괄하는 자리다. 육사 48기인 주 사령관은 계엄 당시 1군단장(중장)이었고, 이재명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9월 대장으로 진급해 지상작전사령관에 임명됐지만 5개월 만에 직무 배제됐다. 국방부는 주 사령관의 구체적인 혐의는 밝히지 않았다.
징계 대상 중에는 지난해 내란 특검 수사 당시 불기소 처분을 받은 사람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상부 명령에 적극 저항하지 않고 지시에 따라 출동했다는 등의 이유로 징계와 수사 의뢰 대상에 됐다. 군 관계자는 “결과를 보니 참담하다”며 “수사 의뢰 결과 혐의가 없다고 나와도 국방부가 다 징계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했다. 중앙부처 공무원은 “일단 징계해 놓고 개별 공무원들에게 알아서 소송하라는 뜻인 것 같다”고 했다.
TF는 이날 계엄 선포 이후 국무총리실이 행정기관 청사 출입을 차단하고, 국가안보실이 계엄 사유를 담은 서신을 주요국에 보내라고 외교부에 지시한 것을 ‘내란 협조’ 사례로 언급했다. TF는 “(공무원이) 불법 계엄의 의도와 목적을 이해하고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개별 지시를 이행함으로써 내란을 완성하는 데 기여할 뻔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시에 저항한 일부 공무원 사례를 ‘저항 사례’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 경찰관이 경찰청장에게 ‘계엄사령관 포고령에 따르지 말고 국회를 지켜야 한다’고 촉구하는 글을 경찰 내부망에 올린 사례도 포함됐다.
이번 조사는 대상이나 규모 면에서 전례 없는 수준이었다. 중앙행정기관 49곳에 TF가 설치됐고, 정부 측 536명, 민간인 125명 등 650명 넘는 인력이 투입돼 계엄 전 6개월부터 대통령 탄핵 선고까지 10개월간의 공무원 행위를 조사했다.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개설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았고,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공무원에게는 징계를 덜 받게 해주겠다고 했다. TF는 실제로 공무원 2명이 ‘자진 신고’를 해 징계를 감경받았다고 밝혔다.
TF는 지난해 말 정부가 ‘내란 청산’ 드라이브를 거는 과정에서 출범했다. 지난해 하반기 군 인사 과정에서 계엄 관련자가 진급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더불어민주당이 반발했고, “내란 특검 수사·재판이 지지부진하다”는 당시 여권 분위기와 맞물리며 지난해 11월 중앙부처 전체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TF 구성에 대해 김민석 총리에게 보고받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특검에 의존할 게 아니라 (정부가) 독자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 장관도 계엄 선포의 진상을 알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일반 공무원들에게 ‘내란 동조’ 여부를 추궁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TF 시작 때부터 계속됐다. 특히 적지 않은 공무원이 대기 발령, 직위 해제되면서 관가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다. TF도 이날 “어떤 기관에도 불법 계엄의 위헌성과 불법성을 검토하고 걸러내는 체계가 없었다”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이번 발표를 끝으로 정부는 감사·감찰 차원의 내란 관련 일제 점검을 원칙적으로 종결한다”고 했다. 다만 국방부 자체 수사가 진행 중이고, 최장 170일간 수사하는 2차 종합 특검(권창영 특검)에서도 또다시 내란·외환 혐의 관련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어서, 군인 등 공무원을 상대로 한 조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이날 2024년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지휘한 혐의로 김용대 전 드론작전사령관을 파면했다. 김 전 사령관은 직권남용과 허위 공문서 작성, 허위 명령·보고 등 혐의로 내란 특검에 기소됐고 지난해 12월 10일 보직에서 해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