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4일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현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의 이른바 ‘민원 사주’ 의혹에 대해 “진술이나 물적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감사원은 류 전 위원장이 아들이 민원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민원과 관련된 방심위 심의·의결에 참여한 것은 이해충돌방지법을 어긴 것이라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이날 오후 공개한 류 전 위원장 감사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앞서 20대 대선 사흘 전인 2022년 3월 6일,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는 이른바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를 보도했다. 화천대유 대주주였던 김만배씨가 2021년 9월 15일 뉴스타파 전문위원이었던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과 한 인터뷰다. 김씨는 인터뷰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사이던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 수사를 무마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시점은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진행한 대장동 개발에 특혜 비리가 있다는 언론 보도가 본격화하던 때였고, 뉴스타파가 이를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이 맞붙은 대선 직전 보도한 것이다. 대선 이후, 신씨가 인터뷰 직후 김씨에게서 ‘책 세 권 값’ 명목으로 1억6000여 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인터뷰 녹취록 전문을 공개하면서, 보도의 주 내용이 짜깁기된 것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김씨와 신씨는 구속 기소됐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뉴스타파 보도 직후 KBS와 MBC, JTBC, YTN이 이를 인용 보도했는데, 2023년 9월 4일부터 방심위에는 이 4개 방송사를 제재해 달라는 민원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이튿날 방심위는 이 민원을 긴급 심의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잇따라 회의를 열어 2023년 11월 4개 방송사에 대해 총 1억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의결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 의결을 받아들여 4개 방송사에 실제로 과징금을 부과했다. 4개 방송사가 모두 과징금 부과 취소 소송을 제기해,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4개 방송사를 제재해 달라는 민원을 두고, 류희림 당시 방심위원장이 민원을 사주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2023년 12월부터 방심위 직원들은 류 전 위원장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으로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신고했고, 같은 달 몇몇 언론이 류 전 위원장이 친지를 동원해 4개 방송사를 겨냥한 민원을 내게 했으며 이후 관련 심의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방심위는 이 보도들에 민원인의 신원 정보가 들어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아 직원들을 감찰하고, 수사 기관에도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해 3월에는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 사건에 대한 감사 요구안이 의결돼, 감사원이 감사를 실시하게 됐다.
감사원은 감사 보고서에서 “류 전 위원장의 가족, 지인 등이 동일 시간대에 유사한 내용의 민원을 일시에 제기하는 등 민원 사주 정황이 확인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민원인의 민원 제출 경위 조사, 방심위의 업무 처리 과정 확인, 류 전 위원장 등 관련자의 PC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등 다각적으로 조사를 실시했으나, 류 전 위원장이 민원을 사주했다는 진술이나 물적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민원 사주 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감사원은 당시 민원을 냈던 25명 각각에게 민원을 낸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출석·답변을 요청했고, 13명이 조사에 응했으나, 류 전 위원장이 민원을 내도록 한 것이라는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류 전 위원장과 주요 민원인에게 통신 기록을 요구했으나 이미 2년가량이 지나 관련 통신 기록을 확보할 수 없었고, 그 밖에 방심위 내부 문서, 디지털 포렌식 결과에서도 류 전 위원장이 사주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감사원은 다만 류 전 위원장이 2023년 12월 그의 친지들이 민원을 냈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고, 늦어도 이때부터는 친족 5명이 민원을 냈다는 것을 인지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류 전 위원장은 이해충돌방지법상 신고·회피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4개 방송사를 제재하는 안건 심의·의결에 참여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은 이것이 이해충돌방지법과 방심위 행동강령에 규정된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어긴 것이라고 봤다.
감사원은 또 류 전 위원장이 동생이 민원을 냈다는 것을 부하 직원으로부터 보고받았고, 그런데도 국회에서 수차례 위증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부하 직원의 국회 위증을 교사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또 류 전 위원장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직원들에 대해 보복성 인사 조치를 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할 근거 자료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방심위에 민원을 넣은 사람들의 신원 정보가 들어 있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 방심위가 정보 유출자를 찾는 감사를 한 것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감사원은 방심위에 류 전 위원장에 대해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과태료가 부과되도록 조치하라고 통보했다. 또 류 전 위원장의 국회 위증 혐의는 고발 대상에 해당되나, 이미 국회가 고발한 만큼 추가로 고발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류 전 위원장이 공직에 재임용되지 못하도록 류 전 위원장의 비위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두기로 했다.